"불행의 운명을 짊어진 한 사람이 태어났다”

입력
2024.05.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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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 세라 마거릿 풀러



19세기 미국의 비평가 겸 저널리스트 세라 마거릿 풀러(Sarah Margaret Fuller, 1810~1850)는 수전 앤서니 등 19세기 미국 1세대 페미니스트들이 등대처럼 우러렀다는 인물이다. 길지 않은 삶을 불꽃처럼 살다 간 그는 만 10세 생일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1810년 5월 23일 슬픔과 고통,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는 불행의 운명을 짊어진 한 사람이 태어났다.” 그 조숙한 소녀는 변호사 아버지의 엄한 훈육 속에 정규 교육과정보다 훨씬 깊고 혹독한 교육-고전, 철학, 문학, 역사-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는 지식을 쌓으며 자신이 감당해야 할 현실의 간극, 즉 19세기 여성의 삶을 일찌감치 예감했던 듯하다.

23세 되던 해 아버지의 법률사무소가 도산하고 2년 뒤 콜레라로 아버지가 숨지면서 궁핍해진 그는 보스턴 등 여러 곳에서 약 5년간 교사로 일했고, 1839~44년 교육을 못 받은 여성들을 상대로 문학과 철학, 신화에 관한 ‘대화’ 수업을 진행했다. 당시 이미 탁월한 지식인으로서 랠프 월도 에머슨, 엘리자베스 피보디 등과 교유했던 그는 여성으로선 최초로 하버드대 도서관 이용자격을 부여받았고 당시 유행하던 초월주의 계간지 ‘The Dial’의 편집자(1840~42)로서 칼럼을 썼으며 뉴욕트리뷴 기자(1844~45)로 40년대 이탈리아 독립전쟁 종군기자로 활약했다. 1849년 이탈리아 공화파 패배 직후 그는 현지에서 만나 결혼한 공화파 남편과 갓난아이와 함께 피란-귀국길에 올랐다가 조난당해 당시 집필 중이던 이탈리아 혁명사 원고와 함께 실종됐다. 그는 선구적인 노예 해방론자였고, 젠더 불평등 재산법 개혁운동가였다.

그는 1845년 페미니즘 소책자 ‘19세기 여성’을 출간했다. 여성의 삶과 사회적 위상에 초점을 둔 책에서 그는 사회를 향해, 특히 여성들을 향해 정치적 평등과 정서적-지적-영적 성취를 열렬히 호소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