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협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우크라이나 주도로 다음 달 열리는 국제 평화 정상회의(이하 평화회의) 견제 목적이라는 분석과 함께 서방 국가에 협상 가능성을 타진해 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푸틴 대통령의 협상안이 '우크라이나 영토를 약 20% 점령한 현 상황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가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구도다.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4일(현지 시간)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회담한 뒤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협상 복귀 필요성을 다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협상)에 준비돼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협상 언급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7일 다섯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취임식에서도 "러시아는 서방과의 대화를 거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간 발언이 '장기전 책임 회피' 등을 위한 수사로 받아들여졌다면 이번 발언은 한층 더 실현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를 뒷받침하는 보도가 나오면서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러시아 인사 5명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소규모 고문 그룹에게 '서방이 협상을 방해하려 한다'며 좌절감을 표했다", "푸틴 대통령은 필요한 만큼 싸울 수 있지만 전쟁 동결을 위한 휴전 준비도 돼 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의 협상 언급은 다음 달 15, 16일 스위스 니드발젠주(州) 뷔르겐슈토크에서 열리는 평화회의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전으로 우크라이나 국경 복원' 등을 요구하며 평화회의를 주도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이를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를 향한 메시지 측면도 있다. 우크라이나를 계속 돕는 대신 전쟁을 쉽게 끝낼 방법을 택하라는 신호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은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좌우할 주요 변수 중 하나다. 미국 CNN방송은 "푸틴은 최전선이 갑자기 동결될 수 있는 '간단한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을 모호하게 제안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현재로서는 협상 재개 가능성이 희박하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5월 20일부로 5년 임기가 만료됐으나 선거도 없이 집권을 연장한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협상은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푸틴 발언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현 상태에서 러시아와의 휴전 협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확고하다. 또 러시아가 25일에도 하르키우 대형 상점을 공격해 수십 명의 민간인 사상자를 내는 등 공세를 이어가고 있어 협상 타진 메시지의 진정성도 의심을 받고 있다.
이에 국제사회는 일단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은 24, 25일 이탈리아에서 회의를 열어 '러시아 동결 자산 수익금을 우크라이나 지원에 활용하는 방안'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했다. 다음 달 G7 정상회의에서 최종 합의를 이루는 게 목표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G7 내에 동결된 러시아 자산은 3,000억 달러(약 410조 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