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 제균 치료하면 내시경 시술 후 위암 발생 12% 낮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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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6 19:06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균은 위 속 세균으로 위장 점막에 주로 감염되며 전 세계 인구의 50% 이상이 감염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위선암, 위림프종 등을 유발하는 원인이다.

전 세계적으로 헬리코박터균 감염 유병률은 조사 시기와 지역, 검사법에 따라 15~80%로 다양하게 보고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위암이 많이 발생하는 나라에서는 감염률이 더 높다.

국내 성인의 55% 정도가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돼 있다. 감염자 대부분은 별다른 증상이 없다. 감염률에 높은데 비해 위암 발생률과 상관관계, 제균 치료 시행으로 인한 항생제 내성 문제로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제균 치료를 일률적으로 시행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제기돼 왔다.

김범진 중앙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헬리코박터균 감염은 위암 발생과 관계가 있어 제균 치료가 위암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에 관한 명확한 연구는 부족한 상황으로 제균 치료의 필요성에 논란이었다”고 했다.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항생제 내성은 치료 실패의 중요한 이유가 된다. 우리나라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내성률이 점차 증가하고 있어 제균 치료 핵심 약제에 대한 항생제 내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제균 치료 부작용으로 설사·무른 변 등이 발생할 수 있으며, 구역감·복통 등도 나타나며 쓴맛, 금속 맛 등의 미각 이상, 발진이나 두드러기 등 피부 과민 반응 등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국내 헬리코박터 진료 지침에서 권고하는 바에 따르면 소화성 궤양의 병력, 림프종, 조기 위암 내시경 절제술 후에는 제균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위축성 위염 환자, 위암 가족력 있는 환자, 일부 기능성 소화불량증 환자는 제균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최근의 여러 연구에 따르면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가 위암 발생 위험뿐만 아니라 위암으로 인한 사망도 낮출 수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국내 한 대학병원에서 대한소화기학회지에 발표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헬리코박터균 양성인 건강한 사람과 위 신생물로 내시경 절제술을 시행한 헬리코박터균 양성 환자를 대상으로 2년 이상 조사한 결과,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가 위암 발생 위험을 50% 정도 낮췄다.

또한 미국 카이저 퍼머넌트 노선 캘리포니아 댄리 박사 연구팀이 1997~2015년 헬리코박터균 검사나 치료받은 71만6,567명을 대상으로 2018년 12월 31일까지 추적 관찰한 결과, 일반인과 비교해 제균 치료 10년 후 위선암 발생 위험이 49% 낮았다.

최근 발표된 국내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이용한 빅데이터 연구에서도 위선종으로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 후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를 한 뒤 평균 5.6년의 추적 관찰 기간 '이시성 위암' 발생 위험이 12% 낮았다.

‘이시성 위암(異時性 胃癌·Metachronous Gastric CancerㆍMGC)'은 조기 위암에 있어 내시경으로 절제 수술을 한 뒤에도 남아 있는 위의 다른 곳에서 시간이 지난 후에 새로 발생하는 암을 말한다.

헬리코박터균 위암이나 위장 질환뿐만 아니라 심혈관 질환, 당뇨병, 퇴행성 신경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범진 교수는 “최근 여러 연구에서 헬리코박터균과 허혈성 심혈관 질환 연관성에 대해 보고되고 있는데, 균에 의해 촉발된 만성적 감염이 혈관 벽 손상 및 죽상판(atheromatous plaque) 발생에 영향을 미쳐 죽상경화증 초기 단계에 작용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6만 명 정도 건강검진 수검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여러 종류의 지질 수치 분석을 통해 헬리코박터균 감염이 심혈관계 위험 요인과 연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급성 관상동맥증후군 발생 위험도 증가시키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했다.

당뇨병과 헬리코박터균 연관성 연구도 발표되고 있는데, 혈당 조절에 있어 헬리코박터균 감염이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인슐린 저항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제시되고 있다.

헬리코박터 감염이 인간과 동물 모두에서 간의 인슐린 저항성을 유도한다는 주장이 있다. 제균 치료 후 당뇨병 환자의 미세 알부민뇨가 호전됐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헬리코박터균 감염이 인체의 신경세포에 대한 교차 반응을 유도하면 세포성 면역반응 및 체액성 면역 반응을 일으켜 신경세포 손상을 초래할 수 있는데 동물 실험에서 헬리코박터균 감염이 뇌의 시냅스 기능을 손상시켜 인지 기능을 떨어뜨리는 것이 확인됐다.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다발성 경화증 등의 퇴행성 신경 질환과 연관성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김범진 교수는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 여부에 대한 다양한 찬반 주장이 있지만, 무증상 보균자 전체에 대해 제균 치료를 시행하면 위암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의 과학적 근거가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2020년에 발표된 한국인 헬리코박터균 감염 치료 근거 기반 임상 진료 지침 개정안에 따르면 헬리코박터균 양성인 환자가 철분 결핍성 빈혈, 위선종의 내시경 절제 후 이시성 위암의 발생 예방, 기능성 소화불량증 환자, 만성 위축성 위염 및 장상피화생 등이 있으면 제균 치료를 권고하고 있다.

김 교수는 “헬리코박터균 검사로 환자 병력·가족력 등을 고려해 전문의 판단에 따라 환자 개인 상황에 맞게 제균 치료를 시행할 수 있다”고 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