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적 위기가 극에 달한 가자지구 내 구호 활동까지 막으려는 이스라엘 우익의 공격이 도를 넘고 있다. 잇단 방화로 유엔 구호단체 본부 한 곳이 일시 폐쇄된 데 이어 이번에는 가자지구로 향하는 구호트럭이 불탔다.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국제적 비난이 거세다.
이스라엘 건국 76주년 독립기념일 역시 폭력과 깊은 분열로 얼룩졌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예루살렘포스트에 따르면 이스라엘 우익 활동가 수십 명이 13일(현지시간) 서안지구 헤브론의 타르쿠미야 검문소에서 가자지구로 향하던 구호트럭 최소 2대를 공격해 불태웠다. 이들이 식량 꾸러미를 짓밟고, 쌀과 밀가루·설탕 등 구호품을 도로 위에 버리는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졌다.
이날 구호트럭 공격은 이스라엘인 인질이 하마스에 잡혀 있는 동안에는 가자지구로의 구호품 전달을 반대하는 극우 단체 '차브 9'가 주동했다. 이들은 지난 1일에도 요르단과 맞닿은 서안지구 앨런 교차로에서 구호트럭을 약탈했다. 지난주엔 이스라엘 남부 사막마을 미츠페 라몬 인근 도로를 막아선 바 있다. 도로에 돌을 뿌리고 연좌시위를 벌여 구호 차량을 막아섰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이같이 계속된 구호트럭 약탈·공격은 이스라엘 경찰의 묵인하에 이뤄지고 있다는 폭로가 나왔다. TOI에 따르면 이스라엘 보안기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구호트럭 이동에 관한 내부 정보를 입수한 후 구호품을 약탈하고 불태우는 폭동을 이스라엘 경찰이 외면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에 말했다. 특히 대표적 극우 성향 정치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이 이들을 단속하지 말라고 경찰을 독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 측의 노골적인 구호 활동 방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7일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방위군(IDF)이 최소 8번 구호단체를 공격했다고 가디언이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를 인용해 14일 전했다. 여기에는 지난달 1일 월드센트럴키친 구호 활동가 7명이 IDF의 오폭으로 숨진 사건도 포함된다. 휴먼라이츠워치는 "모든 사례 속 구호단체는 이스라엘 당국에 좌표를 제공했다"며 "이러한 공격은 가자지구에서 생명을 구하는 구호 활동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보호기구(UNRWA)도 지난 9일 동예루살렘 본부를 일시 폐쇄한 바 있다. 이스라엘 우익 청년들이 일주일 새 2번이나 방화를 시도하면서다. 해당 건물에는 구호 차량을 위한 주유소가 있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가디언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가 '인위적 기아'를 야기하고 있다고 짚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구호트럭을 공격하고 약탈하는 이들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스라엘의 76주년 독립기념일 하루 전날인 13일 전몰장병 추념일(현충일) 행사는 충돌 속에 치러졌다. TOI에 따르면 이날 아슈도드 군 묘지에서 열린 추념식 연설에 나선 벤-그비르 장관에게 "범죄자" 등 야유가 쏟아졌다. 이에 그의 지지자들이 맞서면서 몸싸움과 주먹다짐까지 벌어졌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이날 예루살렘 헤르츨산 국립묘지 행사에서 "쓰레기" "당신이 내 아이들을 데려갔다" 등 격한 항의를 받았다.
이날 텔아비브에서는 독립기념일 행사를 대체한 반(反)정부 시위가 10만 명이 집결한 가운데 열렸다. 이들은 "인질 석방 없이는 독립도 없다"면서 네타냐후 총리 사임과 인질 석방을 촉구했다. 아내와 딸이 인질로 잡혔다가 풀려난 첸 아비그도리는 "올해 독립기념일은 행복한 날이 아니다"라며 "국민을 220일 동안 (인질로) 버려둔 국가에 영광이란 게 있느냐"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