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포도주를 붓자 소녀가 죽어버리고"...시대가 질식사시킨 작가의 독백

입력
2024.05.17 11:00
25면
배수아 작가의 [다시 본다, 고전2]
이란 소설가 사데크 헤다야트 '눈먼 부엉이'

편집자주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에 대해 다시 조곤조곤 얘기해 봅니다. 1993년 등단한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배수아 작가와 출판 편집 기획자 출신 강창래 작가가 한국일보에 격주로 글을 씁니다.

독일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말했다. 도저히 잊지 못할 만큼 깊은 인상을 받은 책이 있는데, 주변의 친구들 중 아무도 그 책을 읽었다는 이가 없어서 매우 놀랐던 경험이 있다고. 그의 주변인들이 모두 어떤 식으로든 문학 관련자인 것을 생각하면 그의 놀라움은 당연하다. 어느 날 그는 책들로 가득한 방에 초대받았다고 했다. 사방 벽의 책장을 채운 것은 주어캄프 출판사가 현대 세계문학의 고전이라고 할 만한 작품들을 선정해 심플한 디자인으로 출간한 비블리오테크 주어캄프(BS) 시리즈였다. 책등을 하나하나 살피던 그는 처음 보는 작가의 책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책을 펼친 후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다.

“삶에는 마치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상처가 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는 점점 더 사로잡혔고, 너무도 강렬하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그만 두려울 정도였다고 했다. 주인공이 아편의 환각 속에서 털어놓는 독백이 반복과 상승으로 소용돌이치며 절정으로 향해가는 도중, 대개 독자가 책에 가장 사로잡히는 그 순간, 그는 그만 책을 덮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 책을 계속 읽기 위해서 그는 페르시아로 가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책은 이란의 작가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였다.

'눈먼 부엉이'는 베를린 서가의 주인이 가장 강렬하고 가장 어두우며 가장 절망적이고 가장 황홀한 책이라고 내게 소개한 책이었다. 물론 여기서 '가장'이란 문학 작품을 수치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을 전제한 레토릭이다. 나는 페르시아에 가지 못했고, 베를린의 한 거리에 면한 환하고 작은 방에서 이 책을 읽었다. 5월이었고, 녹색의 환한 햇살 가득한 거리에서 흥겨운 노동절 데모대가 지나갔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책 속 주인공의 아편 연기나 음울하고도 신비적인 초현실주의 독백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의 질병과 상처, 어둠과 절망을 이해할 수 있었고, 또 그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기 위하여 이란으로 떠났던 베를린 서가의 주인을 너무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시대에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의 고통을 앓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독하게 잊히지 않는 암흑과 절망

'눈먼 부엉이'는 거의 100여 년이나 이전에, 1930년대에 쓰인 작품이다. 정확한 집필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친구들의 증언 등에 의하면 헤다야트는 프랑스 파리에 머물던 1930년에, 그의 나이 20대 후반 무렵, 원고의 대부분을 완성한 상태였을 거라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비슷한 시기의 한국 작가 이상의 '날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는데, 전혀 아무런 연관이 없이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기존의 문학적 관습과 시각을 뒤흔들 만한 이러한 작품들이 젊은 작가들에 의해서 동시에 탄생했던 1930년대란 과연 어떤 시대였을까.)

'눈먼 부엉이'는 부피가 작은 책이다. 내용이 복잡하거나 유난히 어려운 문체도 아니다. 독서 경험과 교양이 있어야만 즐길 수 있는 ‘지식인 소설’에 속하지도 않는다.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나 한 자리에 앉아서 한나절 동안 한두 잔의 커피를 마시면서 읽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아마도, 읽은 다음에 지독하게도 잊히지 않는 소설로 꼽힐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암흑과 심연의 절망이 지배하는 독백이다. 죽음에의 공포와 죽음에의 열망이 공존하는 언어이다.

그 배경에는 암울한 시대의 검열과 억압, 유·무형의 강제 속에서 서서히 질식해가는 생명의 발버둥이 느껴진다. (헤다야트는 이란의 정치적 독재를 겪었고 또한 그의 파리 유학에는 공학을 전공하여 엔지니어가 되어야 한다는 가족들의 압박이 있었다고 알려진다. 그의 첫 소설 제목은 '생매장'인데, 그 무엇보다도 그의 정신세계를 잘 대변해주는 제목인 듯하다.) 오직 아편의 환각 속에서만 주인공은 위안을 얻는다. 주인공은 그 누구에게도 자신을 털어놓을 수 없다.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오직 유일하게, 그가 동질감을 느끼는 존재는 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이다. 그림자는 부엉이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 눈먼 부엉이에게, 그는 고해이자 독백을 시작한다.

작품 전체는 한 덩어리의 독백 형식이지만,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화자인 '나'는 필통에 그림을 그리는 가난하고 고독한 화가이다. 어느 날 나는 벽 틈새의 작은 구멍을 통해서 지금까지 전혀 보지 못했던 낯설고 신비스러운 광경을 목격한다. 시냇가의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 앉아있는 꼽추 노인, 마치 천상에서 온 듯한 아름다운 소녀가 그에게 메꽃을 건네주고 있다. 나는 소녀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혔고 이후로 몇 달 동안이나 집 주변을 서성이며 소녀를 다시 만나고자 하지만 소용없었다.

몇 달 뒤 어느 날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밤 산책을 다녀온 나는 바로 그 소녀가 집 앞에 앉아있는 것을 발견한다. 나는 소녀를 집 안으로 들이고 소녀는 내 침대에 누운 채 잠이 든다. 소녀가 목이 마를 거라고 생각한 나는 소녀의 입에 고대의 포도주를 흘려 붓고, 소녀는 잠시 뒤 죽어버리고 만다. 공포와 전율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는 소녀의 시신을 토막 내어 먼 곳의 묘지로 가서 묻는다. 그런 다음 아편의 환각 속에서 벌어지는 그의 악몽이 꿈의 심연을 부유하는데 이것이 나의 전생과도 같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형성한다.


인도에서 첫 출간, 이란에선 금서로 지정

헤다야트는 1903년 이란의 존경받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란 테헤란의 프랑스 학교에서 프랑스어와 문학을 공부한 그는 1926년 프랑스로 간다.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면서 학업과 거주지를 끊임없이 바꾼다. 1929년 강물에 투신자살을 시도하였으나 구출된다. 1930년 이란으로 돌아와 은행원으로 일한다. 이 시기에 작가 화가 배우 등의 예술가들과 페르시아 문화의 갱생을 도모하는 그룹을 결성하고 단편과 희곡 등을 발표한다. 이뿐만 아니라 릴케와 카프카, 사르트르 모파상 등을 페르시아어로 번역한다.

대표작인 '눈먼 부엉이'는 그가 이미 파리에 머물 당시에 썼을 것으로 추정되나 1937년이 되어서야 인도의 뭄바이에서 한정 분량으로 50부가 최초 인쇄되었다. 헤다야트는 당시 레자 샤 집권하의 이란에서 출간이 불가능함을 알고 인도로 원고를 가져갔으며, 최초 인쇄본에는 “이란에서 출간 판매를 하지 말 것”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책이 이란에서 출간된 것은 레자 샤가 하야한 이후인 1941년이다. 책은 출간되자마자 크나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극단적 허무주의 정조가 자살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한동안 금서가 되기도 했다. (심지어 21세기에 들어와서도 '눈먼 부엉이'는 여전히 이란의 서적 검열 대상이 된다.)

이후 고국의 억압된 삶에 적응하지 못한 헤다야트는 의사인 친구가 발급해준 서류를-이란에서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다는-이용해 이란을 떠날 수 있었다. 1951년 그는 파리 아파트의 모든 틈새를 막은 후 가스를 틀어놓고 자살한다. 죽기 전 자신의 미출판 원고들을 모두 폐기한 것으로 알려진다.

베를린 서가의 주인이 '눈먼 부엉이'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것은 이란 고대도시 시라즈에 있는 페르시아 시인 하피스의 영묘에서라고 했다. 어느새 석양이 찾아왔고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마지막 참배객들이 하피스의 묘석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책 읽기를 마치자마자 '눈먼 부엉이'를 내게 추천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나 역시 자신처럼 느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했고 그의 생각은 옳았다.

배수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