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과 제스처는 달라졌다. 다만 내용은 기대에 미흡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9일 "국민 여러분의 삶을 바꾸는데 저희의 힘과 노력이 많이 부족했다"고 한껏 자세를 낮췄다. 2022년 8월 이후 1년 9개월 만에 기자회견을 재개하며 소통에 나섰다.
반면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또한 정부 정책의 성과를 부각시키고 야당의 협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주력했다. 분명 이전과 다른 모습이지만, 진정성 있는 변화 의지를 체감하기에 아직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기자회견에 앞서 집무실에서 '대국민보고' 형식으로 정책 성과와 향후 국정운영 계획을 설명했다. "요즘 많이 힘드시죠?"라고 운을 뗀 윤 대통령은 "봄은 깊어 가는데, 민생의 어려움은 쉽게 풀리지 않아 마음이 무겁고 송구스럽다"고 했다. 이어 "저와 정부를 향한 질책과 꾸짖음도 겸허한 마음으로 더 새겨듣겠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반성의 의미를 담으려 애썼지만 정작 국정기조는 여전했다. 윤 대통령은 총선 참패 원인을 묻는 첫 질문에 "제가 국정운영을 해온 것에 대해 국민들의 평가가 '좀 많이 부족했다'는 것이 담겼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결국은 민생에 있어 아무리 노력했더라도 국민들께서 체감하는 변화가 많이 부족했다"고 답했다. 총선 패배 이후 첫 국무회의(4월 16일)에서 "아무리 국정방향이 옳고 좋은 정책을 추진한다고 해도 국민이 실제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정부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던 발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윤 대통령은 '구체적인 국정기조 전환 방안을 말해달라'는 질문에는 "시장경제와 민간 주도 시스템으로 우리의 경제 기조를 잡는 것은 헌법 원칙에 충실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한다. 고칠 것은 고치고 또 일관성 있게 지킬 것은 지키겠다"고 말했다. 모두발언에서는 외려 "정쟁을 멈추고 민생을 위해 정부와 여야가 함께 일하라는 것이 민심",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야당도 힘을 모아달라"며 공을 야당으로 넘겼다. 또한 '하이타임(적기)'을 언급하며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할 일을 뒤로 미뤄놓은 채 진영 간 갈등을 키우는 정치가 계속되면 나라의 미래도, 국민의 민생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진 안일한 인식이 드러났다'며 박한 평가를 내렸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국민들이 듣고 싶은 것은 총선 패배와 낮은 지지율에 대한 반성이지, 장황하게 늘어놓은 행정 성과가 아니다"라며 "여야 관계를 풀고 국민들이 대통령의 태도 변화를 인지할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진단했다.
박창환 장안대 특임교수는 "변화, 반성, 쇄신 의지를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지난달 일방통행적 메시지만 도드라졌던 '국무회의 모두발언'의 확장판에 불과하다"면서 "레임덕의 결정적 원인은 총선 패배가 아니라 대통령이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총선 참패에서 어떤 교훈을 깨달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가 없었다"며 "중요한 질문에는 동문서답하고, 이걸 보고 실망하는 국민이 많으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국정 동력이 있을지 두려운 마음"이라고 탄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