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형, (전)무송이 형, (박)정자 누나, (손)숙이 누나. 이런 분들이랑 연습을 재밌게 잘해야지 생각하니 연습하러 가는 길이 기쁘고 즐겁습니다."(배우 박지일)
"올해 제가 환갑인데 (젊은 배우들이 자리한) 세 번째 줄에 앉았습니다. 부족함을 다 드러내 보이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어 요즘 연기를 새로 시작하는 마음입니다."(배우 길해연)
7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연극 '햄릿' 기자간담회에서 60대인 두 배우는 "존경하는 선배들과 함께 무대에 서게 돼 기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여느 무대에선 '원로' 대접을 받을 이들이 '형' '누나' '선배'를 입에 올린 건 '햄릿'이 이호재(83)부터 루나(31)까지, 다양한 세대의 배우들이 꾸미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음 달 9일부터 9월 1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햄릿'에는 전무송(83), 박정자(82), 손숙(80)과 남명렬(65), 박지일(64), 길해연(60) 등 각종 연기상을 휩쓴 중견 배우들과 강필석(46), 이충주(39) 등 뮤지컬 스타까지 24명의 배우가 참여한다. 이들의 연기 경력을 합치면 900년도 넘는다. 제작진도 화려하다. 연출가 손진책, 극작가 배삼식, 무대미술가 이태섭 등 한국 공연계를 대표하는 창작자들이 이름을 올렸다.
올해로 탄생 460년을 맞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끊임없이 반복·변주돼 왔다. 이번 '햄릿'은 공연제작사 신시컴퍼니가 2016년 초연한 연극의 세 번째 프로덕션. 2016년엔 햄릿 역의 유인촌(73)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평균 연령 66세의 배우 9명이 모여 28회 공연이 전석 매진됐고, 2022년엔 원로 배우들이 조연으로 물러나고 햄릿 강필석, 오필리어 박지연 등 젊은 배우들이 합류, 15명의 배우가 한 달간 무대에 올랐다. 올해는 공연 기간이 3개월 가까이로 늘면서 출연 배우가 많아졌다. 햄릿은 강필석과 이승주(43)가 번갈아 연기한다. 정동환·길용우(69)가 햄릿의 숙부인 클로디어스를, 김성녀(74)·길해연이 햄릿의 어머니 거투르드를 맡았다. 오필리어는 이 작품으로 연극에 데뷔하는 아이돌 출신 배우 루나가 연기한다.
손진책 연출가는 "죽음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는 '햄릿'은 삶을 어떻게 진지하게 살 것인가를 죽음을 통해 반추한다"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적극적으로 허물고자 했다"고 이번 시즌의 차별성을 밝혔다. 그는 "2022년 공연은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며 "이번에는 인물들을 죽은 채로 살아 있는 사령(死靈)으로 그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죽음이 만연하는 상황과 감정을 배우의 움직임으로 표현하고자 정영두 안무가가 새롭게 합류한 것도 이번 시즌의 특징이다.
공연 수익은 차범석연극재단과 한국연극인복지재단에 기부할 계획이다. 프로듀서인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는 "공적인 일에 헌신하고 연극계 어른들을 지켜 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앞으로도 2, 3년 간격으로 연극계 어른들을 모시는 축제 같은 좋은 연극을 발굴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