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어른들의 못난 연금개혁

입력
2024.05.07 19:00
26면

편집자주

88년생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와 93년생 곽민해 뉴웨이즈 매니저가 2030의 시선으로 한국정치, 한국사회를 이야기합니다.

이번 연금개혁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머릿속이 꽃밭인 모양이다. 연금을 '개혁'하자면서 적자 폭을 더 늘렸다. 지난달 공개된 공론화위원회 공론조사 결과, 시민대표단 492명은 현행 9%의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40%인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는 1안과 보험료율은 12%까지만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유지하는 2안 중 1안을 선택했다. 재정안정과 소득보장 중 소득보장을 고른 셈이다. 연금개혁이 이대로 결정되면 국민연금 기금 고갈은 2055년에서 2061년으로 겨우 6년 늦춰진다. 반대로 2093년까지 누적적자는 지금보다 702조 원 늘어난다.

참여연대와 양대 노총 등 300여 개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국민연금의 소득보장성을 강화하지 않으면 "다섯 살인 2020년생이 연금을 받는 2085년에도 노인빈곤율은 30%에 육박"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런데 그들은 그 바뀐 연금을 지탱하기 위해 오늘날의 다섯 살 아이들이 소득의 43.2%를 보험료로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소득보장은 알라딘의 요술램프가 아니다. 말만 한다고 해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그 부담을 져야 한다. 10년, 15년쯤 뒤에 연금을 받게 될 분들이야 '소득보장 강화'를 주장해서 수령액을 높이면 그만큼 이익이겠지만, 미래세대는 그 명분을 지탱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가처분소득을 희생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적금이 아닌 사회연대'라며 젊은 세대가 은퇴 세대를 부양하는 게 당연하다는 식의 주장은 비겁하다. 당장 동 세대 안에서의 불평등한 구조, 예컨대 소득이 높아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연금을 받는 구조에 대해선 찍소리도 못 하면서 아직 사회적 발언권을 갖지 못한, 혹은 태어나지도 않은 이들에게 그 부담을 지우는 꼴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연대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이 시대의 부조리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미래세대에 연대를 강요할 수 있냐는 말이다. 어쩌면 연금이 고갈되는 2060년대의 대한민국은 소수의, 가난한 청년들이 자기들보다 수도 많고 경제적으로도 여유 있는 기성세대의 연금을 내기 위해 허덕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 같다.

소득보장을 높여야 한다는 쪽에선 책임은 없고 권리만 횡행하고 있다. 안온한 노후를 위해 지금 우리가 얼마나 희생해야 하는지 하는 이야기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고작 4%p 더 내는 걸 가지고 '개혁'이라 명명할 뿐이다. 그러니 낙관적인 전망이 쏟아진다. 자동화에 따라 생산성이 증대될 거고, 경제 규모도 확대돼 개인소득도 늘어날 거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저출산·고령화 대응은 무엇 하러 하나. 어차피 생산성이며 소득이며 다 늘어 경제는 잘만 굴러갈 텐데.

연금개혁이 이번 공론화위원회의 발표대로 결정된다면 그 청구서를 받아 들 이들은 주로 오늘날의 10대 이하 청소년, 그리고 2030세대가 낳을 자녀들이 될 것이다. 기성세대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미래세대에게 폭탄 떠넘기는 모습을 보고도 청년들이 그 부담을 지게 될 아이를 낳고 싶을까? 이런 모습 보이면서 저출산 극복하자고 수십, 수백조 원 예산을 쏟아붓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