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전기·소방시설 관련 기업 대경엔지니어링 김대환 대표가 제주에서 전기차 박람회를 열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그럼에도 그는 '2030년 탄소 없는 섬' 제주가 되려면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가 섬을 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왜 전기차 엑스포가 필요한지 사람들을 설득했다. 마침내 2014년 5월 첫 번째 글로벌 전기차 박람회가 첫선을 보였다. 김 대표는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10년 넘게 이 행사를 이끈 김 위원장을 지난달 30일 제11회 국제 e-모빌리티엑스포가 열린 제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제주ICC)에서 만났다.
제주에 녹색 생명을 불어넣자고 앞장설 정도로 제주를 사랑하지만 사실 김 위원장의 고향은 강원도다. 그런 그가 제주와 인연을 맺은 건 군 복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에서 전기 공학을 전공한 김 위원장은 1982년 현역병으로 입영해 제주에서 군 생활을 했다. 당시 제주의 자연과 환경의 매력에 푹 빠진 김 위원장은 제대 후 아예 제주에 눌러 살기로 결심한다. 1995년 제주에서 전기 관련 기업을 창업하고 매출 100억 원대 건실한 업체로 키웠다.
김 위원장은 "어느 날 제주 남쪽 섬 가파도를 찾았는데 이곳 주민들이 외지로 떠나고 인구가 줄고 있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워 뭐라도 해야겠다 생각했다"며 "2009년 '가파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꾸리자 제주에 사는 교수, 언론인, 금융인, 사업가 등이 힘을 보탰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한번 전공을 살렸다. 그의 구상은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가파도를 전기 에너지 자립섬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탄소 배출 없는 섬을 구현해 많은 사람들이 찾게 하자는 것. 작은 섬에 전신주 지중화와 마이크로 그리드1 국책 과제 등을 따내 열정을 다했다. 이후 그의 관심 지역은 가파도를 넘어 제주도 전체로 넓어졌고 2012년 국제녹색섬포럼 설립 등으로 이어졌다. 가파도를 위해 만들어진 '탄소 없는 섬' 콘셉트는 어느 새 제주의 지향점이 됐다. 국제전기차박람회가 녹색섬 제주에서 열린 배경이다. 2012년부터 그는 아예 기업 경영은 아내에게 맡기고 전기차 관련 행사와 협회를 이끄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
탄소 없는 섬을 앞장서 외쳤지만 솔직히 김 위원장도 전기차가 대세가 될 것이라곤 내다보지 못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전기 자동차의 역사가 약 200년 됐는데 사실 그동안 큰 진전이 없었다"며 "최근 10년 동안 전기차 업계가 이렇게 크게 달라지리라곤 처음엔 예상 못 했다"고 말했다.
제주 e-모빌리티엑스포는 2014년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로 시작해 올해부터 전기차뿐만 아니라 전기 선박,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농기계, 로보틱스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첫 회 4개였던 참가 나라 수도 50개로 늘었고 관련 회의만 150개 넘게 열릴 만큼 규모와 인지도 모두 상승했다.
김 위원장의 욕심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제주를 전기차의 성지로 만들고 e-모빌리티엑스포를 전기 모빌리티 분야의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으로 키우겠다는 다음 목표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김 위원장은 "다보스포럼도 1971년 시작했지만 10년 가까이 주목받지 못했다"며 "꾸준히 착실히 이어가다 보면 전 세계 100개 넘는 나라의 전기 모빌리티 분야 리더들이 제주에 모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며 "성산포에서 전기 선박을 논의하고 중문단지에서 전기차, UAM을 토론하는 시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