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민센터에서 진행한 악성 민원 대응 모의훈련에서 악성 민원인으로 열연한 공무원이 화제다.
3일 서울 금천구에 따르면 구는 지난달 17일부터 전날까지 10개 동 민원실에서 '특이 민원 대응 경찰 합동 모의훈련'을 진행했다. 실제 상황을 가정한 훈련으로 악성 민원인에 대응하는 방법을 익히고 경찰과의 협조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취지다.
시흥4동 주민센터에선 혼인신고를 하러 온 민원인이 난동을 부리는 상황을 가정했다. 구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면 민원인 역할의 행정자치팀 A 주무관은 주민센터에 들어가자마자 "아가씨, 오늘 혼인신고하러 왔어"라며 반말을 내뱉는다. 담당 직원이 "혼인신고는 주민센터가 아닌 구청에서만 가능하다"고 안내하자, A 주무관은 "너희 일하기 싫어서 지금 떠넘기기 하는 것 아니야?"라고 언성을 높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주민센터 내 집기를 집어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대뜸 "당신네 대통령이 와도 이렇게 할 거냐!"고 따지고 영화 '범죄와의 전쟁' 속 대사를 패러디해 "너희 구청장 어디 살아? 남천동 살아?"라고 묻기도 했다. 공무원들은 "저희는 대통령이 와도 안 된다"고 침착하게 응대했다.
난동이 계속되자 공무원은 "원활한 업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영상을 촬영하겠다"며 보디캠으로 채증을 시작했다. 이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상황은 마무리됐다.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하도 (악성 민원인에) 시달려서 외운 것 같다", "저런 훈련을 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민원인 역할 공무원은 배우로 전직해라" 등의 반응을 남겼다.
A 주무관은 4년간 민원 업무를 맡으며 쌓인 경험을 활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민원인분들이 안 되는 걸 되게 해달라고 하실 때 '대통령이 와도 안 해드린다'고 말씀드리는데 그게 생각나서 대사로 썼다"며 "'과장 나와'라는 식으로 무작정 상급자를 호출하는 일도 흔하다"고 했다.
가장 힘든 괴롭힘을 묻자 그는 "이런 대면 난동보다 문서로 괴롭히는 게 제일 힘들다"며 "국민신문고 등으로 '공무원 징계' 등을 반복 요청하면 응대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마땅한 대응책도 없어 고민"이라고 전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공무원을 상대로 한 폭언·폭행·성희롱 등 위법 행위는 2019년 3만8,054건에서 2021년 5만1,883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 3월엔 경기 김포시의 9급 공무원이 악성 민원인에 시달리다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