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세포 영양분 통로 '간문맥' 막힌 환자, 세계 첫 간이식 성공

입력
2024.05.02 09:09
세브란스병원, 혈전 제거술 후 ‘생체 간이식’

혈전으로 간문맥이 막혀 이식이 불가능했던 환자에게 간이식 수술이 성공리에 이뤄졌다.

이재근·민은기(이식외과)·한기창(인터벤션 영상의학과) 세브란스병원 교수팀은 이식 수술 시 연결해야 하는 간문맥이 혈전으로 막혀 수술이 불가능했던 간경변 환자 정민수(47) 씨에게 혈전 제거 시술을 시행한 후 간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2일 밝혔다.

정 씨는 약물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간이 딱딱하게 굳은 간경변을 앓고 있었다. 간경변은 간세포 염증이 생겨 정상 세포가 파괴되는 증세가 반복하면서 발생한다. 정상 간의 상태로 회복될 수 없어 간이식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정 씨는 이식을 위해 세브란스병원을 찾았지만, 처음에는 간이식 불가 판정을 받았다. 간이식 시 이식 간의 간문맥을 수혜자의 간문맥과 서로 연결해야 하는데, 정씨는 간문맥이 혈전으로 막혀 있기 때문이었다.

간문맥(肝門脈·portal vein)은 위장관·비장 등에서 흡수한 영양 성분을 운반하는 혈액이 간 모세 혈관으로 흐르는 혈관이다. 장에서 영양분과 혈류가 공급되는 상장 간막 정맥과 비장에서 혈류가 공급되는 비장 정맥이 만나서 간문맥을 이룬다. 비장(脾臟·지라·spleen)은 왼쪽 콩팥과 횡격막 사이에 있는 장기로, 혈액 속 세균을 죽이고 늙어서 기운이 없는 적혈구를 파괴한다.

담당 의사인 이재근 이식외과 교수는 상장간막정맥과 이식 간의 간문맥을 연결하는 방법도 고려했지만 이마저도 혈전으로 막혀 있었다. 게다가 간문맥과 비장을 잇는 비장 정맥도 막혀 있었고 비장도 26㎝로 정상 크기의 2배 이상 커져 있었다.

이때 이재근 교수는 한기창 인터벤션 영상의학과 교수에 협진을 요청했고, 이식에 앞서 TIPS(Transjugular Intrahepatic Portosystemic Shunt·경경정맥 간내 문맥정맥 단락술) 시술을 시행해 간문맥을 막고 있는 혈전을 우선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TIPS는 간문맥에 금속 망 튜브인 스텐트(stent)를 넣어 터널(shunt)을 만들며 막힌 혈관을 개통하는 시술이다. 한기창 교수는 기존에 간이식을 받은 환자에서 간문맥 혈전이 발생했을 때 수차례 TIPS 시술을 진행한 바 있다.

한기창 교수는 3시간에 걸쳐 간문맥과 상장간막정맥 혈전을 모두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이재근 교수는 정 씨의 간문맥을 이식 간의 간문맥과 연결해 이식 수술을 완료했다. 비대해진 비장도 수술 중에 함께 제거했다.

지금까지 혈전 제거 시술 이후 생체 간이식을 연이어 성공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없었다. 스텐트를 삽입한 상태의 간문맥을 이식 간의 간문맥과 연결하는 것이 기술적인 정교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 씨의 경우 간문맥은 물론 상장간막정맥 혈전도 제거해야 했고, 비장까지 제거하는 등 수술 난도가 높았다.

이재근 교수는 “간문맥과 상장간막정맥이 혈전으로 막힌 경우 이식을 진행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환자가 많았다”며 “영상의학과와 협진을 통한 TIPS 진행으로 간이식 기회를 더욱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세브란스병원 장기이식센터 간이식팀은 다낭성 간 질환 환자 수술, 진행성 간암 환자의 간이식 수술 등 난도 높은 수술을 성공하며 간이식이 필요한 환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