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도 휴진도 최선두에… ‘공공성’ 잊은 서울대 의대 교수들

입력
2024.05.02 04:30
5면
서울대 의대 교수 4명, 1일자로 사직
전날 휴진 뒤 심포지엄… 정부 성토장
집단 사직·집단 휴진 '법 위반' 지적도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교수 4명이 예고했던 대로 1일 사직했다. 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집행부로 활동한 방재승(신경외과) 배우경(가정의학과) 김준성(심장혈관흉부외과) 한정호(신경외과) 교수로, 모두 분당서울대병원 소속이다. 비대위원장인 방 교수만 해도 외래진료 예약 환자가 1,9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직서는 정식으로 수리되지 않았지만 교수들은 출근하지 않거나 출근하더라도 환자 진료는 하지 않을 계획이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전날 임시 휴진도 했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선 교수 약 500명 중 38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휴진율이 낮아 우려했던 의료대란은 없었다. 하지만 외래진료 일정이 갑자기 밀리고 검사가 취소되는 등 환자 피해가 없진 않았다.

진료실을 비운 의사들은 당일 서울대병원 본원 어린이병원 강당에 모여 심포지엄을 열었다. 주제는 ‘대한민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길’. 그러나 발제자 대다수는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교수들이었고, 강연과 토론은 필수의료 패키지를 비롯한 정부 정책에 대한 비난으로 채워졌다.

온라인 생중계로 대중에게 공개된 행사였는데도 정제되지 않은 거친 발언까지 서슴없이 오갔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을 향해 “잘 때 걸레를 물고 자는 것 같다”며 인신공격을 퍼부었고, “정부가 주술적 목적에서 2,000명이라는 숫자를 고수한다”는 음모론도 언급됐다. 심포지엄보다는 성토대회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환자 및 소비자단체도 초대해 의견을 듣는 시간이 마련됐지만 발전적 논의로 이어지진 않았다.

행사를 지켜본 환자들 반응은 싸늘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료 정상화에 대한 고민은 없고 의대 증원 반대 주장을 알리는 데만 치중한 것 같다”며 “환자들이 겪는 피해나 불안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모습에 환자들이 의사에 대한 신뢰마저 잃을까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의료계와 교육계에서도 서울대 의대 교수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서울대가 지닌 상징성과 영향력 때문이다. 서울대병원과 같은 날 연세대(세브란스병원)와 국립경상대(진주·창원 경상대병원) 등 전국 8개 대학병원 교수들이 기관별로 2.5~35%가량 휴진에 동참했지만, 서울대병원은 ‘의료 공공성의 최후 보루’라는 점에서 특히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대는 법인화됐으나 국민 혈세로 운영된다. 서울대 법인회계 세입세출 예산안 자료를 보면 지난해 서울대에 투입된 정부 출연금은 5,775억 원으로, 전체 세입의 57.8%를 차지한다. 서울대 의대 교수에겐 국가공무원법이 준용된다. 국가공무원법 제58조는 ‘소속 상관의 허가나 정당한 사유 없이 직장을 이탈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제66조는 ‘공무 외 집단행동’을 금지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집단 휴진은 물론이고 집단 사직도 법 위반 소지가 충분하다고 지적한다. 교수들이 사직서 수리 전 병원을 떠난다면 무단결근이라 학교 및 병원 내부 규정에 근거한 징계도 가능하다. 서울대 이과계열 한 교수는 “서울대 교수들이 존경받고 명예를 누리는 건 전국 1등 출신이어서가 아니라 사회적 책무 때문”이라며 “교육자로서 책무를 내팽개치고 의사 집단 이익만 좇는다면 국민이 혈세로 월급을 줄 이유가 없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지금 ‘교수 집단행동’ 대열의 최선두에 서 있다. 집단 사직 결의도 다른 의대보다 빨랐고, 20개 의대 교수 공동 비대위 초기 집행부도 서울대 교수가 맡았다. 서울대 교수들이 사직이나 휴진을 결의하면, 곧이어 공동 비대위와 다른 의대들이 사직·휴진에 가세하는 패턴이 되풀이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서울대 의대 정원은 정부의 비수도권 의대 집중 배분 방침 때문에 한 명도 늘지 않았다.

지방 사립대 의대 교수는 “서울대병원은 전공의 비율이 5대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가장 높을 정도(46.2%)로 전공의 노동력 착취 사슬의 최정점에 있다”며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교수들이 반성은커녕 사직과 휴진으로 정부와 환자를 겁주는 행위는 특권의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표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