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선균을 잃고 슬펐는데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우리는 충분히 슬퍼해도 됩니다. 우리가 많이 사랑했던 배우잖아요, 그의 연기를 통해 우리 참 많이 행복했잖아요. 우리 함께 애도해요.”
올 2월 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배우 이선균씨가 목숨을 끊은 지 두 달이 지난 즈음이었다. 글을 올린 이는 서유지(44)씨. 그는 양육시설 종사자 교육, 부부상담, 부모 대상 강연을 하는 상담 전문가이자 한국부모교육연구소 소장이다. 그러나 이 글을 올릴 때는 아꼈던 한 배우를 잃고 슬퍼하는 팬이자, 자살 사별자였다.
그의 글에 디엠(다이렉트 메시지)이 쏟아졌다.
“이선균씨가 죽었다는 소식에 일주일간 누워만 있었어요.” “왜 내가 이렇게 슬픈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알겠어요.” “일하다가도 문득문득 ‘나의 아저씨에서 그가 불렀던 노래가 생각나서 우울해요.”
그중 많은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애도해도 된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주위에서 ‘왜 유난이냐’라고 할까 봐 어디다 말도 못 하고 혼자 삭이고 있었는데 속이 시원하다”는 얘기였다.
자신이 좋아했던 유명인을 자살로 잃은 이들 대부분이 겪는 일이기도 하다. 서유지씨도 마찬가지였다. 배우 이선균씨를 잃고 슬픈 마음을 가장 친한 친구에게 내비쳤더니 돌아온 답. “아는 사람도 아닌데 그렇게 감정 이입할 일이야?”
이후로 아무에게도 자신의 슬픔을 얘기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곤 혼자서 시작했다, 자신만의 애도를. 이선균씨가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그램까지 모조리 찾아서 보며 울고 웃었다. 생각이 날 때마다 그에게 조용히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슬픔을 그렇게 밖으로 꺼냈다. 그러다 깨달았다. ‘나처럼 슬퍼하는 사람들과 함께 애도해야겠다.’
그는 ‘상실 전문 상담가’다. 양육시설 청소년이나 그들을 돌보는 시설 종사자를 대상으로 강연하고 교육도 한다. 양육시설의 아이들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부모를 상실한 이들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상실감을 직시하고, 적극적인 애도를 시작할 수 있기도 했다.
그가 말했다. “슬픔은 애도로 치유되고, 애도는 상실을 말하면서 시작된다”고.
-배우 이선균씨를 왜 좋아했나요.
“저는 어떤 배우가 좋으면 그가 출연한 작품을 찾아보는 성향이에요. 아마 이선균씨의 초기작인 영화 ‘쩨쩨한 로맨스’(2010)를 보면서부터 좋아하기 시작했을 거예요. 그러다가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와 영화 ‘기생충’(2019)으로 배우로서 굉장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잖아요. 그래서 참 보기 좋았죠. 더 잘되길 바라는 마음도 들었고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사건에 연루됐다는 소식이 들렸죠.”
-그때 참 안타까웠을 것 같아요.
“사실 관계를 떠나서 그가 경찰에 드나들면서 온갖 얘기들이 언론 보도로 쏟아져 나왔잖아요. 대부분 (대중은) 궁금하지도 않은 것들이었죠. 사생활까지 파헤쳐지고요. 그걸 보면서 ‘견디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예인도 정치인처럼 대중의 감탄사를 먹고사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하루아침에 자신의 존재가 나락으로 떨어졌으니 너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조마조마했어요.”
-그런데 12월 27일 ‘이선균 사망’이란 뉴스가 전해졌죠.
“그 속보가 뜨는 순간 멍했어요. 숨이 헉, 막히는 느낌이었죠. 그러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자살이구나. 버틸 수 없었을 거야.’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들었어요. 또 연예인이 그렇게 죽다니. 죄를 떠나서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떠올리니 너무나 슬펐어요.”
-그런 감정을 주위에 말을 하기도 했나요.
“혼자서 긴 시간 너무나 슬퍼하다가 가장 친한 친구에게 말했어요. ‘배우 이선균씨가 자살한 일이 잊히지가 않는다. 여운이 너무 오래간다. 나 왜 이렇게 슬프지?’ 그 친구는 이해해 줄 줄 알았거든요. 최소한 ‘그래. 너 그 배우 좋아했잖아’라고는 해주리라고 기대했죠. 그런데 그 친구가 덤덤하게 ‘너무 감정 이입하지 마’라는 거예요.”
-팬 자살 사별자들이 많이 경험하는 일이죠. ‘가족도 아닌데 네가 왜 그러니’라는 주위의 반응요.
“맞아요. 함께 밥을 먹길 했냐, 본 적이 있길 하냐, 친한 사람이길 했냐는 뜻이겠죠.”
-그 말을 듣고 어땠나요.
“친구의 반응에 ‘아, (내 마음을)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곤 배우 이선균씨의 프로필을 찾아서 그동안 그가 출연한 방송, 영화, 드라마, 아주 잠깐이라도 나왔던 예능 프로까지 정말 집요하게 찾아서 보기 시작했어요. 그런 작품에서 불렀던 노래들도 찾아서 듣고요. 그래도 제 일상을 살기는 해야 하니까 집안일 하면서도 틀어두고, 잠자기 전에도 보고 그랬죠.”
-그러다 2월 말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함께 애도하자’는 글을 올린 거군요.
“생각해 보니 저처럼 너무나 슬픈데도 주위의 그런 반응 때문에 표현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을 것 같더라고요. 애도하는 방법을 나누고 싶기도 했어요. (장년의 배우는) 아이돌처럼 팬 카페나 커뮤니티가 활발한 것도 아니니까 대중이 슬픔을 함께 표현할 공간이 거의 없잖아요.”
-상실의 감정이 어느 정도였나요.
“제가 본래 심리 상담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정의를 해보면, 상실은 내가 마음을 줬던 대상에게서 뜯겨져 나오는 상태예요. 저는 이선균이라는 배우를 보면서 그에게 제 마음을 줬어요. ‘재미있다, 잘한다, 어쩜 저렇게 인간의 다양한 상태를 잘 표현할까’ 같은 감정이죠.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2017)에선 촐싹대면서도 똑똑한 왕의 역할을,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선 그저 묵묵하게 인생을 버텨내는 소시민이자 직장인의 역할을 했잖아요. 사람 내면의 작은 요소까지 참 잘 발견해서 연기에 녹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가 자살한 순간 이선균이라는 배우, 그가 했던 역할 그리고 이선균이라는 한 인간에게 붙여놨던 저의 마음과 감정이 강제로 확 뜯겨졌어요. 제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그 순간 (그 사람과 나와의) 시곗바늘이 멈춘 거죠. 그 사람과 나하고의 시간이 거기서 딱 서버린 거예요.”
-이선균이라는 배우 그리고 한 인간과 함께 나이 들면서 누릴 미래의 시간까지도 멈춘 거죠.
“맞아요. 그런데 거기서 시곗바늘을 돌리는 게 애도죠. 저는 그걸 선택한 거예요. 내가 이 시곗바늘을 돌려야겠다고.”
-왜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나요.
“이 슬픔을 그냥 간직하고만 있으면 그 감정을 내가 억누르는 거잖아요. 그걸 누르기만 하고 충분히 슬퍼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내게 돌아와요. 이토록 친밀감을 느끼고 좋아한 배우에게 내 마음을 줬는데 그가 죽었다면 슬픈 감정이 드는 건 지극히 정상이거든요. 제가 슬퍼하려고 해서 슬픈 것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감정인 거예요. 그걸 무시하지 않고 슬퍼하기로 한 거죠.”
-글에서 ‘함께 애도하자’고 했잖아요. 반응이 좀 있었나요.
“메시지가 참 많이 왔어요. 괌에서 사는 분도 연락을 주셨더라고요. 그분은 일주일을 누워만 계셨대요. 그러면서 ‘그런데 이 얘기를 누구한테 할 수 있었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글을 써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요. 그런 얘기를 많이들 하시더라고요. ‘네가 그 사람 때문에 왜 슬프냐는 비난을 받을까 봐 어디다 말도 못 하고 있었다’는. 저는 글을 올리면서 저 같은 사람들에게 ‘슬픈 게 당연하다, 슬퍼해도 된다’는 얘기를 꼭 전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내가 왜 슬펐는지 알게 됐다. 마음이 시원하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어요.”
상실감과 관련해 상담이나 강연을 해온 전문가지만, 자신의 상실을 제대로 들여다본 건 그도 처음이었다.
-적극적으로 애도를 하고 보니 달라진 게 있던가요.
“처음엔 아주 멍했다가 그다음엔 엄청나게 그리웠어요. 그러다가 (애도의 단계로 들어가면서) 시곗바늘을 돌리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고인에게 ‘잘 가시라’는 인사를 하기도 했고요. 온라인에 글을 쓸 때는 그런 과정을 거쳐 일상으로 돌아온 뒤였죠.”
-자신이 좋아했던 배우나 아이돌, 정치인을 잃고 큰 상실감에 빠진 이들에게 애도의 방법을 조언해 주신다면요.
“보내지 못하는 편지를 쓰는 방법이 있어요. 예를 들어, 배우 이선균씨에게도 쓸 수 있고, 그가 했던 역할 중 특별히 좋아했던 배역에 쓸 수도 있죠. 실제 제게 연락을 준 분들과 그런 작업을 함께 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말을 하는 거예요. 상담에서 ‘혀가 풀리면 마음이 풀린다’는 말이 있거든요.”
-슬픔을 마음에 고이도록 두지 말고 표현해서 내보내라는 거군요.
“슬픔을 내 안에 담아놓기만 하면 어디로 가질 못해요. 그러니까 친한 사람에게 말을 하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글을 쓰거나 하는 게 도움이 돼요. 상실감을 다룬 영화를 보는 것도 좋죠. 저는 영화 ‘코코’를 많이 권해요. 망자들이 사는 죽음 너머의 세계가 있는데, 산 자들이 그들을 잊지 않으면 망자들이 그 세계에서도 잘 산다는 내용이에요. 그런 스토리가 신빙성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죠. 우리가 죽은 이들을 기억하면 된다는 그 메시지가 중요한 거예요. 물론 그럼에도 절망감이나 그리움이 장기간 지속되고 일상 회복이 어렵다면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하고요.”
-애도는 참 긴 여정이잖아요.
“애도는 완성이란 개념이 없어요.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애도가 완성되겠어요. 생각날 때마다, 그리울 때마다 그 감정에 머무르다 또 일상을 살고 고인을 기억하는 이들과 기억을 나누기도 하면서 가는 거예요. 그 긴 과정이 애도란 작업이에요.”
-‘애도’ 시리즈의 부제가 ‘자살 사별자들이 마음으로 쓰는 부고’예요. 내가 알았던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이 배우 이선균씨의 면모를 담아서 부고를 쓴다면요.
“아… 정말 슬프네요.”
잠시 생각한 뒤 그가 입을 뗐다.
“우리가 사랑했고 우리를 사랑해서 열심히 연기했던 배우 이선균씨가 사망했습니다. 그는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남편이었습니다. 아주 ‘찌질한’ 연기를, 아주 재미있는 연기를, 때로는 이해 못 할 호통을 치는 연기를 했습니다. 냉정한 사업가이기도 했고 무서운 변호사이기도 했고 어설프지만 똑똑했던 임금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그의 모습은 아마 ‘나의 아저씨’ 속 동훈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회사원, 가족을 위해서 애쓰는데 딱히 나아지는 건 없는 아들이자 남편, 그렇다고 너무 희생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기적이지도 못했던, 좋은 사람이고 싶은데 잘 안 되던, 그래서 누군가에겐 상처를 줬고 누군가에겐 상처를 많이 받았던. 그런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 연기를 했던 배우였습니다. 그가 한창 연기를 잘하고, 또 많은 상을 받았던 시절에 우리는 그를 잃었습니다. 그는 너무 순진한 얼굴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지금 너무 잘됐습니다’라고 말하는 평범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50대 혹은 60대가 된 그의 연기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그의 연기를 기억해 주세요. 제가 정말 사랑했고 여러분도 많이 사랑했던 배우 이선균씨를 이제 이 땅의 삶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그를 먼 훗날 좋은 곳에서 다시 보기를 소망하면서 그를 잊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배우는 대중이 사랑하고, 대중이 기억해 줄 때 배우입니다. 끝까지 그가 배우로 살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의 작품을 기억해 주시고 그 사람의 좋은 목소리와 크게 웃던 입매를 기억해 주세요. 배우 이선균씨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음을 알립니다.”
-그의 죽음이 자신에게 준 의미는 뭘까요.
“연예인의 죽음이나 자살이 먼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이토록 슬퍼하는 제 모습이 참 어색했어요. 여러 상실을 경험한 분들을 상담만 하다가 저 역시 상실을 경험하고 정리하게 된 거죠. 묻어두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직면했으니 제겐 큰 성장이기도 했어요.”
-배우 이선균씨에게 종종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고 했는데, 지금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정말 고마웠어요. 앞으로 더 좋은 연기를 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거든요. 이 고비를 잘 넘기길 바랐어요. 외려 더 좋은 배우가 될 거라고 기대도 했어요. 그러나 너무나 마음이 힘들 것도 짐작했어요. 그래서 너무 애석하고 아쉽습니다. 하지만 예술은 오래오래 남는 거니까 내가 아주 나이가 들어서도 당신의 연기를 찾아서 보고 또 볼게요. 제대로 연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거기에서는 꼭 편안하시기를, 꼭 편안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정말 고마웠어요, 이선균씨.”
그는 그에게 보내는 편지를 말하기 전 “나는 영혼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뒤 그가 “정말 고마웠어요”라며 말문을 여는 순간, 그의 앞에 청자가 와 있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좋아했고 사랑했던, 그러나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때와 방식으로 떠난 이들이 부디 평안하기를, 우리가 그를 기억함으로써 그 역시 안온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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