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전쟁 휴전하면 사우디와 관계 개선'… 이스라엘에 당근 내민 미국

입력
2024.04.29 22:35
블링컨 "사우디와 안보 합의 거의 완료"
이스라엘·하마스에 휴전 협상 보상 차원
사우디 외무도 "휴전이 유일한 길" 압박

중동을 순방 중인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방위조약 체결 협상이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미국 측 구상의 일환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쟁 상황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28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이날 사우디 리야드에 도착해 "사우디와 미국이 (안보) 합의 측면에서 함께 진행해 온 작업이 잠재적으로 완료에 매우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리야드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특별회의를 계기로 중동을 방문, 이스라엘과 요르단 등을 찾을 계획이다.

미국,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추진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논의는 미국이 지난해 불을 지폈다. 양국은 각각 미국의 우방이지만 서로 앙숙 관계인데, 미국은 이 둘이 화해하기를 원했다. 당시 중국이 역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지난해 3월 중동의 또 다른 숙적인 사우디와 이란이 수교하도록 중재하는 데 성공하자 미국 정부는 큰 위기감을 느꼈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화해할 경우, 미국은 중동 동맹 구도를 보다 튼튼히 구축할 수 있으리라고 예상했다.

문제는 사우디였다. 사우디는 관계 정상화로 얻는 이익이 비교적 적었다. 이스라엘은 이슬람 수니파 국가들의 '맞형'격인 사우디와 수교할 경우 주변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우디는 숙적과 손을 잡았다는 비판을 받을 공산이 컸다. 사우디가 미국에 '대가'를 요구하게 된 배경이다. 사우디는 미국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수준의 안보 협약을 체결할 것과, 민간 핵 개발을 위한 우라늄 농축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며 협상은 전면 중단됐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잔혹하게 공격하며 아랍권에서 반감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다만 양국은 물밑에서 대화를 이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가자 휴전' 미끼 된 이·사우디 관계 개선

특히 사우디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쟁을 끝내고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인정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에 동의해야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다는 방침을 세웠다. 미국 역시 이를 수용한 채 이스라엘에 하마스와 휴전 협상을 체결할 것을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사우디와의 관계 보상이 휴전에 대한 '당근'이 된 셈이다. AFP는 "블링컨 장관은 오랜 기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인정하는 데 대한 보상책을 찾고 있었다"고 짚었다.

따라서 이날 발표는 미국이 이스라엘 및 하마스에 휴전 협상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사우디와의 안보 지원 협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만큼, 휴전만 하면 이스라엘에는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이, 팔레스타인에 독립 국가 건설이 주어진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실제 이날 미국과 사우디는 휴전을 촉구하는 발언을 내놨다. 블링컨 장관은 하마스를 겨냥,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를 바란다”고 말했고,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 진격 의지를 내비치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민간인들이 효과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고 확신을 주는 계획이 아직 없다"면서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놨다. 파이살 빈파르한 알사우드 사우디 외무장관은 "(협정이) 매우, 매우 가까이 있다"면서 "(팔레스타인 국가로의 길이) 협정을 작동시킬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