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10 총선에서 많은 이슈가 있었지만, 눈여겨볼 것 중 하나가 변호사의 ‘변호 윤리’다. 불을 댕긴 건 서울 강북을에서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았던 조수진 변호사다. 성범죄 가해자를 변호하면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했다는 지적에 여론의 포화를 맞고 자진 사퇴했다. 불똥은 다른 후보들에게도 튀었다. 상대 후보에 눈에 불을 켜고 언론 검증도 본격화하면서 줄잡아 10여 명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런 논란은 각종 선거, 주요 인사 때마다 있었다. 하지만 결과지가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간다. 책임 방기다. 돈만 주면 어떤 내용의 변론도 할 수 있다는 세속적인 변호인을 욕할 수 있지만, 여론이 '마녀 사냥' 식으로 모두를 싸잡아 돌팔매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 선거가 던져준 이 고전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건, 같은 논란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사회의 역할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두환도, 세월호 선장도, 막가파도 다 변호사 도움을 받았다. 헌법 제12조 제4항을 보자. ‘누구든지 체포나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그러자면, 변호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변호사 윤리규약(제16조 제1항)은 ‘변호사는 사건의 내용이 사회 일반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변호를 거절할 수 없다’고 명시한다. 민경현 변호사(법무법인 정향)는 “세상 사람들이 다 욕을 해도 그의 얘기를 듣고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이 단 1명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변호사”라고 했다. “아무리 파렴치범이고 흉악범이라고 해도 자신이 저지른 죄보다 더 강하게 처벌돼서는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헌법 조문과 현실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흉악범도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은 변호사 업계에선 도덕 교과서에나 나오는 이야기다. “변호사도 사람인지라 사회적 평판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서울 삼성동 K변호사)는 고충을 너도나도 털어놓는다.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의 변호를 맡게 되면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을 각오도 해야 한다. 엄청난 수임료를 받을 게 아니라면 평생 꼬리표로 따라 다닐 수 있는 사건 수임을 저어하는 건 당연하다. 2017년 여중생 딸의 친구에게 음란행위를 한 뒤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어금니 아빠’ 이영학을 변론하겠다고 나섰던 변호사는 사흘 만에 재판에서 손을 뗐고, 2010년 8세 여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수철의 경우 최후의 보루인 국선변호인조차 “큰 사건이라 부담된다”며 사임했을 정도다.
이번 총선 과정에서 문제가 된 변호사 출신 후보들에 대한 정치권의 논평이나 언론 보도를 보자. ‘살인자도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전제를 깔고는 있지만, 정작 해당 범죄의 잔혹성 부각에 주력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말로는 아니라면서 흉악범과 변호인을 동일시하는 국민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다.
선대위 대변인이었던 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조수진 논란에 맞불 카드로 꺼내든 국민의힘 조수연 후보(대전 서구갑)에 대한 서면브리핑 내용은 이랬다. ‘작년 7월 대전에서 100억 원대 전세사기 사건이 벌어져 많은 대전시민이 고통을 받았다. 조 후보가 이 사건 핵심인물로 지목된 전 프로야구 선수 안모씨 변호를 맡았다. 국회의원 후보가 전세사기 주범을 변호한 것이 가당키나 한가. 대전시민의 피눈물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것 아닌가.’
전문을 뜯어봐도 변론 내용의 부적절성을 지적하는 내용은 없다. ‘대전시민의 피눈물’을 흘리게 한 건 피고인 안씨이지 조 변호사는 아닌데, 그렇게 몰아가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안씨에게도 변호를 받을 헌법적 권리가 존재한다’는 한 문장은 그저 면피성 사족이다. 이완용 두둔 등 그의 숱한 문제 발언은 차치하고 변론 논란만 떼놓고 보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민주당 전은수 후보(울산 남구갑)에 대한 언론 보도의 제목은 ‘기초수급자 수백회 성폭행 변호’ ‘308회 성폭행 변호’ 등이었다. 의뢰인 범죄의 잔혹성을 부각한다는 건, 그런 가해자를 변호하는 것 자체가 비도덕적인 행위로 몰아가겠다는 얘기다. 변론의 문제점 지적은 ‘무죄 취지로 주장했다’는 것 외엔 딱히 없다.
가치 상충이 논란이 되기도 한다. 민주당 이용우 당선자(인천 서구을)는 동료를 성폭행한 노조원의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린 것이 문제가 됐다. 그가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119’ 창립멤버로 ‘노동인권 변호사’를 자처해왔는데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김혜란 후보(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갑)는 지역 성폭력상담소 위원이면서 성폭력 가해자를 변호한 것을 민주당이 문제 삼은 경우다.
형사 사건을 주로 맡는 변호사들은 이런 여론의 반응에 상당히 예민하다. 형사 전문 채다은 변호사(법무법인 한중)는 “수많은 형사 변호 사건 중 단 1, 2개의 사건을 끄집어 내서 수임 자체를 문제 삼는다면 형사 사건을 아예 맡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중요한 건 누구를 변호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변론을 했느냐다. 변호사법은 ‘변호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에 진실을 은폐하거나 거짓 진술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제24조 제2항)고 규정한다. 이른바 ‘진실의무’다. 스스로 진실에 반하는 것을 알면서 허위의 사실을 주장하거나 증거를 신청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실 은폐나 증거 인멸 같은 변호권의 본질을 넘어서는 행위를 한다면 도의적 책임은 물론이고 법적 책임도 져야 한다”고 했다. 이번 총선 후보자 상당수도 이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흉악범에게 무죄 취지 변호를 했다는 것이 비판받아야 할 일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최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로 지명된 오동운 변호사 또한 미성년자 상습 성폭행범을 변호했던 전력이 논란이다. 대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이 확정된 흉악범을 “무죄 변론했다”는 것을 일부 언론들은 문제 삼는다. 하지만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의뢰인이 무죄를 주장하고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고 본다면 드러난 사실관계와 증거하에서 무죄 변론을 하는 게 옳다”며 “실체적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성폭행범 변론 과정에서의 2차 가해 문제는 더 민감하다. 가해자의 무죄나 형량 감경 등을 주장하다 보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동반될 소지가 다분하다. 김대근 연구위원은 “성폭행 사건의 경우 진실을 다투는 재판 과정 자체가 2차 가해일 수밖에 없다”며 “조금의 개연성이라도 갖고 주장을 하는 것이라면 그 자체만으로 비난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정인진 변호사 또한 “선을 넘는 변론은 용인할 수 없다”면서도 “증거와 법률에 따른 주장을 2차 가해라고 한다면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조수진 변호사의 경우 피해자가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을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고 알려져 2차 가해 공분을 불렀지만, 추후 조 변호사가 언급한 내용이 아님이 드러나면서 해당 언론사들이 줄줄이 정정보도를 싣기도 했다.
원론적이긴 해도 이런 사안일수록 ‘올바른 변호사’가 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정희원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조 변호사 논란이 한창이던 무렵 SNS에 “오히려 제대로 된 변호사가 성범죄자를 기꺼이 변호하기를 원한다”며 “변호사야말로 피고인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당연히 변호사도 수임을 거절할 권리가 있다. 변호사 윤리규약을 비껴 사건을 거절할 명분은 차고 넘친다. 수임료가 맞지 않아서, 의뢰인의 주장을 신뢰할 수 없어서, 해당 분야를 잘 몰라서, 수임 사건이 많아 바빠서 등등. 민경현 변호사는 “변호사 본인의 양심에 반하는 사건은 수임을 거부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이번 총선에서도 변호사의 윤리와 국회의원 등 공직자 윤리는 다르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을 때는 흉악범 사건을 많이 수임하든 말든 자유일지 몰라도, 그런 변호사라면 국회의원 등 공직에 진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민 변호사 역시 “변호사의 업무로서는 충분히 정당하다고 해도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공직자 자리에는 부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하지만 ‘경력 관리’를 한 변호사들만 공직에 진출하는 것에 회의적 시각도 많다. 장성근 변호사(법률사무소 강물)는 “다양한 경력과 경험을 한 변호사가 판사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경력 관리를 하며 편협한 시각을 가진 변호사들이 주요 결정을 내리는 지도층이 되면 세상을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대근 연구위원 역시 “국회 구성원은 다양한 경력의 인물들로 채워져야 한다”며 “진실의무에 충실했다면 악인을 변호한 사람들의 역량이 입법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