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오픈런 성지' 간송미술관, 전시 기간 세 배 늘려 돌아온다 [인터뷰]

입력
2024.04.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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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7개월간 보화각 보수 복원 공사 마치고
'보화각 1938' 재개관전으로 돌아온 간송미술관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일제강점기에 전 재산을 바쳐 문화재를 사들여 문화유산을 지켰다. 훈민정음 해례본, 신윤복의 '미인도' 등의 국보·보물급 유물이 해외로 반출되는 걸 막았다. 서울 성북구 일대에 문화유산을 수집·보존·연구 터전을 마련하고자 수천 평의 땅을 구입, 1938년 건물을 세웠다. 건물 이름은 빛나는 보물이 모인 곳이라는 뜻의 '보화각(葆華閣)'. 한국 최초의 사립박물관으로, 1971년에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간송미술관은 '원조 오픈런의 성지'로 불린다. 1년에 단 두 번, 그것도 15일씩만 일반에 공개됐기 때문에 전시 때마다 인산인해를 이뤘다. 노후한 보화각의 공간적 한계 때문이었다. 그런 간송미술관이 1년 7개월 동안의 보수 복원 공사를 거쳐 다시 돌아왔다. 전시 기간도 3배로 늘려 한 번에 45일씩 매년 두 번 열기로 했다. 다음 달 개막하는 재개관전 '보화각 1938'을 앞두고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을 29일 간송미술관 보화각에서 만났다.



"간송의 꿈 실현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간송미술관은 대규모 대중 전시를 목적으로 한 공간은 아니었다. 해방 후 1960년대까지 보화각은 전통문화 학술연구의 산실이었다. 학생, 학자와 소수의 애호가만이 보화각의 학술전시를 찾았다. 일반 공개 전시를 한 건 1971년부터다.

관객들의 변화가 감지된 건 2000년대 중반이다. 2008년 신윤복을 다룬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인기를 끌면서 신윤복의 '미인도'를 선보인 같은 해 보화각 70주년 기념전이 이른바 '대박'이 났다. 개막 당일에만 2만 명의 인파가 몰려 2㎞에 이르는 대기 행렬이 이어졌다. 미술관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2019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도움을 받아 재정비하게 됐습니다. 전시도 중요하지만 소장품 보존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최대한 타협해 전시 기간을 늘리기로 했습니다."


수장고 이사 도중에 '보물' 같은 발견 와르르

기후위기는 문화재 보존에도 큰 변수다. 간송미술관은 2019년부터 2022년까지의 공사로 항온·항습 설비가 있는 현대적 수장시설을 갖추게 됐다. 이곳저곳에 분산됐던 유물을 새 수장고에 옮겨 통합 관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발견이 쏟아졌다. 1세대 근대 건축가 박길룡(1898~1943)이 설계한 북단장·보화각 청사진 도면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건축계에서 보화각이 정말로 박길룡 건축가의 작품이 맞느냐는 논란이 있었는데, 그 근거가 발견된 겁니다. 청사진 형태로 그려진 도면은 햇빛을 받으면 바래져서 보존이 굉장히 어려운데도 말이죠. 우리나라 사람이 그린 도면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하려 합니다."

보화각 설립과정과 초기 간송 컬렉션을 중심으로 하는 재개관전에는 수장고에 오랫동안 파묻혀 있었던 서화 유물이 수리 복원을 거쳐 전시된다. 처음 공개되는 서화만 36점이다. 주로 19~20세기 화가들의 작품들이다. 고진승(1822~?)의 나비그림은 기록으로만 전해졌을 뿐 실물의 존재가 밝혀진 것은 처음이다. 간송이 1936년부터 1937년까지 서화·골동 구입 내역을 직접 기록한 '일기대장'도 선보인다.

전 관장은 지금까지의 여정을 "북단장(간송미술관 일대)의 1차 정비 완성"이라고 설명했다. 2차 정비에선 간송 컬렉션을 더 많은 국민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데에 주력한다. 올 9월 개관하는 대구간송미술관의 성공적 운영이 첫걸음이다. 대구시가 소유하고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미술관의 개관전시를 위해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 등 간송 컬렉션의 국보·보물급 문화재가 대거 출격한다.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된 대구는 민족주의 정서가 강하고 문화적 소양도 훌륭한 지역입니다. 영호남의 큰 문중의 유물을 연구하고 복원하는 허브로 기능할 수 있지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해서 중남부권 관람객이 대중적인 대형 전시를 편안하고 현대적인 환경에서 즐길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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