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전쟁범죄 피의자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실제로 영장이 나와도 네타냐후 총리가 전범 재판에 설 가능성은 낮지만, 이스라엘의 국제적 위상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가자지구 '최후의 피난처' 최남단 도시 라파에 이스라엘 지상군의 진격이 임박한 가운데, 민간인 대량 희생을 막기 위한 휴전 논의도 재개됐다. 와중에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은 계속됐다.
2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하아레츠에 따르면 ICC가 이번 주 중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방위군(IDF) 참모총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스라엘 정부 안에서 고조되고 있다. 앞서 이스라엘이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된 건과는 별개다.
전쟁범죄와 집단학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는 ICJ와 달리 ICC는 개인을 단죄한다. 카림 칸 ICC 검사장은 가자지구에서 자행된 전쟁범죄에 대해 ICC가 관할권을 갖고 있다고 밝힌 상태다.
이스라엘 정부 소식통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고의로 팔레스타인인을 굶겨 죽였다는 게 ICC 제소 주장의 초점이 될 것"이라고 TOI에 말했다. ICC는 구호물자를 고의로 막는 것 등도 전쟁법 위반으로 간주한다.
다만 ICC가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영장을 발부하더라도 그를 강제로 법정에 세울 방법은 없다. ICC에는 경찰권과 강제력이 없는 데다 이스라엘은 ICC 가입국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장 발부 사실만으로도 더없는 불명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다르푸르의 학살자' 오마르 알바시르 전 수단 대통령 등과 나란히 ICC의 수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영장 발부는 또 네타냐후 총리가 ICC 회원국인 124개 나라를 방문할 경우 체포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자지구 내 인도적 위기로 이미 전 세계 반발을 사고 있는 이스라엘의 국제적 고립도 더욱 심화될 수 있다.
이스라엘 측 반응은 격렬하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2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ICC의 개입은 위험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반발했다. 그는 "중동의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이자 세계의 유일한 유대국가의 군인과 관료를 붙잡겠다는 위협은 터무니없다"며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외무부를 중심으로 영장 발부를 막기 위한 필사적인 총력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정치평론가 벤 카스핏은 현지 왈라뉴스 기고를 통해 "(네타냐후 총리가 영장 발부 가능성에 대해) 비정상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 '전화를 통해 논스톱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TOI는 전했다. 다만 미국도 ICC 가입국이 아닌 만큼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게다가 미국 국무부의 일부 관리들은 이스라엘이 전쟁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이 미국산 무기를 전쟁법에 준해 사용했는지 여부에 대해 다음 달 8일까지 미 의회에 답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항변과 달리 그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전쟁범죄와 인권 침해를 저질렀다는 지적이 국제기구 등으로부터 잇따라 제기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IDF의 라파 공격이 임박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에 따르면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2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특별회의에서 "며칠 내로 이스라엘은 라파를 공격할 것"이라며 "미국이 이스라엘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고 호소했다. 피란민 약 140만 명이 몰려 있는 라파에서의 시가전은 "팔레스타인 역사상 가장 큰 재앙이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라파에서의 재앙을 막기 위한 휴전 논의도 물밑에서 분주하다. WEF 회의 참석차 사우디를 방문한 블링컨 장관은 연달아 이스라엘과 요르단을 찾아 가자전쟁 휴전 압박에 나선다. 앞서 이스라엘이 내놓은 새로운 휴전 협상안을 전달받은 하마스는 29일 협상 대표단을 이집트 카이로에 파견한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이날 오전 팔레스타인 와파통신에 따르면 간밤 IDF의 폭격으로 라파와 가자시티에서 최소 22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10월 7일 전쟁 발생 이후 누적 사망자 수는 3만4,000명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