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가 정쟁에 휘말렸다. 국민의힘 주도로 24일 충남도의회에 이어 26일 서울시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의결하면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반발해 천막 농성을 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인권에 대못을 박는 퇴행",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맹비난했다.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에서 처음 제정되고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인천 제주 등 7곳에서 시행됐다. 지역별로 내용이 조금 다르지만 성적 지향과 종교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사생활 자유, 휴식권 보장 등이 골자다. 지난해 7월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이후 교원들이 교권 회복을 외치자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교권 추락 원인으로 학생인권조례를 들면서 폐지 논란이 불붙었다.
학생 권리가 주로 담긴 조례 제정 이후 교육감들이 학교 현장에 학생 인권을 강조하면서 교원의 교육활동이 위축됐다는 주장은 보수 교원단체 등이 꾸준히 제기해왔다. 상·벌점제가 금지되자 반 학생에게 칭찬 스티커를 줬던 교사가 이를 못 받은 자녀의 부모에게 "차별했다"며 정서학대로 신고당하거나 지도에 불응한 학생에게 쉬는 시간 성찰문을 쓰게 했다고 부모가 "휴식권을 보장 안 했다"며 따진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12년간 학생 인권을 싹틔운 조례를 단번에 없애야 할 명분이 될까. 일부 악용이 있었다 해서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침해의 주요 원인이라 단정할 근거는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말 펴낸 '학생인권조례 바로 알기 안내서'에 따르면 2017~2021년 교원 100명당 교육활동 침해 건수는 조례를 둔 지역이 평균 0.5건, 없는 곳이 0.53건이었다. 인권위는 "조례 여부와 교권 침해는 관계가 없다"고 했다. 체벌과 과잉 규율이 횡행하던 시절 학교를 다닌 교사들도 조례를 계기로 학생 인권이 향상된 데는 대체로 공감하면서 "폐지까지 갈 일인가"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한국교육개발원은 지난해 발표한 '지방교육자치법규의 사후입법영향 보고서'에서 "학생인권조례 시행 지역 학생들의 인권 인식은 미시행 지역 학생들보다 높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인권 신장과 진흥에 조례의 기여가 인정되므로 시행 중인 조례를 전면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보기 어렵고 개선의 방향으로 가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게다가 학생인권조례를 내세우며 수업 시간에 휴대폰을 쓰거나 소란을 피우는 학생에 대응할 교원의 법적 권한도 이미 마련된 터다. 지난해 9월 교육부가 발표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 고시는 수업 중 휴대폰 사용을 제한할 수 있고, 개선되지 않으면 따로 보관할 수 있게 했다. 지도 불응에 경고·훈육 등도 할 수 있게 규정됐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조례와 고시가 충돌하면 "고시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헌법과 국가인권위법 등에, 학생 인권과 개성 보장은 초·중등교육법과 교육기본법에 이미 담겨 있다.
이에 학생인권조례가 사실상 '인권'이 명시된 상징성만 남은 셈이란 교육계 시각도 있다. 바꿔 말하면, 진영 논리가 아니라면 무리하게 폐지를 밀어붙일 사안도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해 여·야·정·시도교육감 4자 협의체를 통해 교권 회복에 공감대를 이루고 관련 법안을 처리했듯, 학생인권조례도 미흡했던 학생 책무 규정 등을 충분한 협의를 통해 균형점을 찾았다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