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지난주 점화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들을 넘어 미 전역으로 번지면서 격화하고 있다. 진압 장비를 착용한 경찰이 교정에 진을 친 시위대 해산에 나서면서 곳곳에서 충돌이 빚어지거나 연행되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시위대에 '반(反)유대주의'라는 혐의를 덧씌우며 공격에 나섰다.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은 컬럼비아대 총장 사임을 촉구하는 한편 주 방위군 투입 필요성까지 제기하면서 기름을 부었다.
24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미국 서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남가주대(USC)에서는 이날 친(親)팔레스타인 시위대 93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교내에 텐트를 치고 점거 농성을 이어가던 이들은 서로 팔짱 낀 채 스크럼을 짜고 한동안 경찰과 대치했다.
이날 미국 남부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에서 34명이, 전날 중서부 오하이오대와 미네소타대에서 각각 2명, 9명이 연행됐다. 앞서 지난 18일 컬럼비아대(108명)를 시작으로 22일 예일대(48명)·NYU(133명)에서만 최소 289명이 체포된 바 있다.
텐트를 치고 캠퍼스 내 공간을 점거한 학생들의 비폭력 시위에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시위는 한층 격렬해졌다. 브라운·매사추세츠공대(MIT)·하버드·프린스턴 등 동부 명문대부터 미네소타·미시간·캘리포니아대 버클리 등 중부와 남부 대학들에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68혁명'을 부른 1968년의 대규모 반전(反戰) 시위 전개와 유사하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시위에 나선 학생들은 학교 측에 이스라엘의 전쟁을 돕는 기업과의 재정적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무기를 파는 기업과 거래하거나 대학 기금을 투자하지 말라는 식이다. 상아탑에 압력을 행사하는 유대계 자본을 말리겠다는 취지다.
앞서 반유대주의 논란 끝에 펜실베이니아대와 하버드대에서 초유의 총장 사퇴까지 간 배경에는 유대계 미국인 자본가들의 입김이 있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네마트 미노슈 샤피크 컬럼비아대 총장도 지난 17일 미국 하원 교육노동위원회 청문회에 불려 가 수모를 당했다. 공화당의 압박에 그는 결국 반유대주의 척결 의지를 밝혔다.
NYT는 샤피크 총장이 공화당 의원들을 달래느라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강력하게 옹호하지 않으면서 수많은 컬럼비아 구성원의 분노를 샀다고 짚었다. 청문회 이후 캠퍼스 내 텐트촌이 들어선 컬럼비아대는 이번 반전 시위의 본거지로 떠올랐다.
반전 시위는 정치권의 참전으로 한층 복잡해졌다. 공화당 소속 존슨 하원의장은 24일 이례적으로 컬럼비아대를 찾아 샤피크 총장의 사임을 촉구했다. 시위대를 해산시키지 못해 유대인 학생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충분히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존슨 의장은 시위가 계속될 경우 캠퍼스의 질서 유지를 위해 주 방위군 투입도 고려할 수 있다거나 연방 자금 지원을 철회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쏟아냈다. NYT는 "공화당 의원들이 반전 시위를 기회로 대학 내에서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만든 SNS 트루스소셜에 반전 시위를 "폭동"이라고 썼고, 네타냐후 총리도 "반유대적 흥분"이라며 동조하고 나섰다.
유대인과 이번 시위를 지지하는 진보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은 난감해졌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대학 내 표현의 자유와 토론, 차별이 없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면서 "그러나 증오에 찬 발언과 폭력에 관해서는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