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이름 가린다고 악성민원이 사라지나요?"

입력
2024.04.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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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찍기' 김포 공무원 사망사건 계기
담당자 이름 비공개 전환 지자체 확산
현장선 "취지 공감, 본질 대책은 아냐"
"신속 종결 처리, 고소고발 체계" 필요

“손 놓고 있는 것보단 낫지만 그거 한다고 달라질까요?”

부산 해운대구는 지난달 21일 홈페이지 행정조직도에서 담당직원의 이름을 성만 남기고 모두 ‘○○’으로 수정했다. 각 부서 사무실 입구에 부착된 좌석 배치표에서도 사진과 이름을 지웠다. 3월 초 항의성 집단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경기 김포시 9급 공무원 사망 사건에 따른 자구책이다. 이른바 ‘좌표찍기’ 등 악성민원을 막겠다는 명분이지만 공직사회 반응은 냉소적이다. 취지는 공감하지만 단순히 이름을 가리는 피상적 조치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무원은 “전화로 물으면 소속과 신분을 밝힐 수밖에 없고, 행정문서 등에도 실명이 찍혀 나가는데 달라지는 게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24일 전국 각 지자체에 따르면 부산 16개 지자체 가운데 10개 지자체가 부서와 담당업무, 전화번호만 표기하도록 홈페이지를 개편했다. 중구, 서구, 영도구 등은 성을 포함해 아예 담당자 이름을 지우고, 직위 표시도 없앴다. 부산뿐 아니라 김포시를 비롯해 인천 서구·미추홀구·부평구, 대전시, 충북 충주시, 충남 천안시 등 이날까지 홈페이지에서 담당 공무원의 이름을 비공개로 바꾼 지자체는 30여 곳에 이른다. 제주도, 경남 창원시 등 검토 중인 지자체까지 포함하면 50곳이 넘는다. 제주도 관계자는 “우선 각 사무실 입구 직원 배치도에 이름과 담당업무를 제외한 사진은 모두 내렸다”며 “추후 홈페이지 등에도 담당업무와 행정번호 등 최소한의 정보만 공개하는 방향으로 수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굳이 홈페이지가 아니라도 다른 창구를 통해 얼마든지 담당 공무원의 신상 정보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담당자를 익명 처리한 지자체들에 전화를 걸었을 때도 대부분 첫마디는 ‘반갑습니다. ○○담당 ○○○입니다’여서 시행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해당 지자체 관계자는 “무분별한 신상정보 공개를 막고, 공무원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의미 있는 시도라고 본다”면서도 “효과를 체감하긴 어렵다”고 인정했다.

이름 공개 여부 자체가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대책이라는 목소리도 크다. 영국이나 호주의 경우 고질 민원인은 연락할 수 있는 직원, 시간, 수단 등을 제한하는 식으로 대응한다. 대표 민원 격무부서인 복지 관련 업무를 3년째 담당하고 있다는 한 공무원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탈락했다고 하루 수십 번 전화하고, 민원 넣고, 게시판에 글 쓰고, 10년 치 정보공개 청구하는 일이 다반사”라며 “이름 공개 여부를 떠나 악성민원 전담부서를 만들거나 반복적인 고의성 민원에 대해선 가중부과금을 매기는 등 좀 더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중배 전국공무원노조 대변인은 “휴대용영상장비 운영, 법적 대응 전담부서 지정, 안전요원 배치 등 기존에 나온 대책들도 결국은 강제성이 없다 보니 예산 등을 핑계로 제대로 지켜지는 곳이 없고 개인의 노력에만 의존하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악성민원은 행정 효율성을 떨어뜨려 정당한 행정 서비스 제공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도 입을 모은다. 김재홍 울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악성민원은 수없이 반복 설명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며 “명확한 근거를 제시했음에도 동일 유사 민원이 지속될 경우 즉시 종결 처리하고, 고소·고발할 수 있는 법적 체계를 마련하는 방안도 고려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현장 민원공무원과 노조, 전문가, 청년 공무원 등의 의견을 수렴해 악성민원 종합대책을 다음 달 초 발표할 예정이다.

부산= 박은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