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고부가가치 친환경 기술 넘쳐났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들 중국서 위기 탈출 답 찾다 [놓칠 수 없는 중국 시장]

입력
2024.04.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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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 '차이나플라스 2024' 가보니
중국 공격적 투자로 범용제품 수익성 악화
SK지오센트릭·LG화학…고부가가치 기술로 승부


지난해 모든 회사들이 친환경·재활용을 강조했다면 올해는 각자의 독보적 기술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권승범 SK지오센트릭 테크솔루션센터장


24일 세계 3대 플라스틱·고무 전시회 '차이나플라스(Chinaplas) 2024'가 열린 중국 상하이 홍차오 국립전시컨벤션센터(NECC)에서 만난 권승범 SK지오센트릭 테크솔루션센터장은 행사장을 둘러보며 이같이 말했다. 실제 SK지오센트릭을 비롯해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국내 기업과 글로벌 화학기업들은 전시 부스를 초록색 나뭇잎과 수풀로 꾸몄지만 '에코(eco)'·'그린(green)' 등을 전면에 내세우진 않았다. 권 센터장은 "친환경을 하지 않겠다는 뜻보다는 전체 제품군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4,400여 개 기업 및 기관이 나온 행사장에서 주요 기업들은 수익성 강화를 강조하며 고부가 화학 제품을 통해 '고성능(high-performance)' 기술을 뽐내고 있었다. 이는 최근 업계 상황과 맞물려 있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대규모 석유화학 생산 단지를 조성해 설비 가동률을 80% 이상으로 높이는 등 중국 석유 화학 제품의 자급률 높이기 정책을 펼치고 있다. 최근 기초 유분과 범용 제품을 중심으로 자급률이 100%에 가까워지고 있어 중국을 주요 수출 시장으로 삼았던 한국 기업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대(對)중국 수출액 비중은 2009년 51.5%에서 지난해 37.3%까지 떨어졌다. 권 센터장은 "과거 행사에선 규모가 큰 부스가 모두 외국 회사들이었다"면서 "올해는 회사 로고를 보지 않으면 중국 기업인지 외국 기업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중국 로컬기업들이 성장했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계열 석유화학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은 에틸렌 아크릴산(EAA)·아이오노머(I/O)·고기능성 폴리머(High Performance Polymer) 등 고부가 화학 제품들을 선보였다. 특히 포장재용 접착제로 쓰이는 EAA는 플라스틱을 대신해 종이용기·종이컵 사용이 많아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늘고 있다. EAA를 만드는 전 세계 4개 회사 중 아시아 기업은 SK지오센트릭뿐이다.

SK지오센트릭은 2017년 미국 다우케미칼로부터 미국 텍사스, 스페인 타라고나 등 2개 EAA 공장을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 6월 중국 장수성 롄윈강시에 EAA 추가 공장을 착공했다. 2025년부터 가동하는 제3공장을 통해 아시아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회사 관계자는 "많은 고객사들이 자체 제작 중인 포장재의 강도나 품질을 유지하는 데 EAA를 활용할 수 있는지 물었다"며 "저가 물량 공세를 앞세운 중국 회사들과 격차를 벌리려면 고부가가치 제품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연분해 플라스틱·순환 재활용…차세대 제품군 선봬


LG화학은 국내 기업 중 최대 규모인 400㎡ 규모 부스 주제를 '지속가능하고 혁신적 제품'으로 정하고 전시 제품 60여 개 중 40% 이상을 친환경 고부가 제품으로 채웠다. 이날 들른 LG화학의 '렛제로(LETZero) 존'에는 땅에 묻으면 6개월 안에 자연 분해되는 PBAT(Poly Butylene Adipate-co-Terephthalate), 바이오 원료로 만든 플라스틱 PLA(Poly Lactic Acid), 폐플라스틱을 원유 상태로 재활용한 열분해유 플라스틱 제품 등이 전시돼 있었다. 회사 관계자는 "중국이 비중을 키우는 범용 화학 제품 외에 독자 기술을 바탕으로 고객사가 원하는 제품 수요에 따라 성능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케미칼은 '고부가 스페셜티 소재'와 '그린 비즈니스 기술'을 소개했다. '스페셜리티 솔루션 존'에서는 모빌리티용 스페셜티 소재와 고투명 의료용 PP(폴리프로필렌), 접착력이 뛰어난 태양광 봉지재용 EVA(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 기계적 및 화학적으로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 저결정성 PET 등 고부가 스페셜티 소재가 전시됐다. '그린 테크놀로지 존'에서는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관련 기술, 수소의 생산, 유통, 활용 등에 관한 기술을 알리며 스페셜티 제품과 배터리 소재·수소에너지 등 친환경 사업 포트폴리오를 중심으로 꾸렸다.




석유화학 수요 정체·중국산 제품 공세…"기술력으로 승부"


SK케미칼은 '순환 재활용' 기술을 소개했다. 이는 전 세계에서 최초로 상업화된 화학적 재활용 기술로 폐플라스틱을 잘게 부숴 씻은 뒤 다시 플라스틱의 원료로 쓰는 물리적 재활용과는 달리 폐플라스틱을 분자 단위까지 분해한 후 플라스틱의 원료로 쓰기 때문에 품질 손상 없이 무한대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최근 중국에서 경쟁사가 나오면서 열에 약했던 플라스틱이 열에 강하도록 성능을 강화해 100도에서도 녹지 않는 '스페셜티' 제품들 위주로 생산 중이다. 박노혁 SK케미칼 상해법인장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연간 5만 톤 이상 생산능력을 갖췄다"며 "순환 경제를 이끄는 선두 업체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은 여전히 중국 기업 대비 우수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친환경성을 갖춘 고부가 화학 제품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범용제품 위주 사업 구조에서 과감히 벗어나 고부가 정밀화학 및 친환경 제품으로 신속히 전환해 나가야 한다"며 "혁신 제품 공급을 통해 고객과 기업 가치 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하이= 나주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