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의 우크라이나 지원안 승인으로 우크라이나가 자신감을 되찾았다. 러시아군에 밀리지 않고 싸워볼 수 있겠다는 판단에 더해 최대 우방국인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제 관건은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무기를 얼마나 빨리 받느냐'다. 우크라이나는 방공망 확충 및 장거리미사일 공급의 시급성을 강조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 하원이 지난 20일(현지시간) 608억 달러(약 84조 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을 통과시킨 것과 관련 "우크라이나가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고 21일(현지시간) 미국 NBC방송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탈레반이 아프간을 통치하게 된 배경에 2021년 미군의 철수가 있었던 점을 빗댄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대공방어체계 '패트리엇'과 장거리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를 우선순위로 거론하며 "우크라이나에 꼭 필요한 무기를 가급적 빨리 지원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9일에도 '방공망 미비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미사일·무인기(드론) 공격에 노출됐다'며 "패트리엇 또는 유사한 무기가 최소 7개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에이태큼스의 경우 미국은 그간 우크라이나에 사거리 160㎞의 구형을 제공해왔으나, 우크라이나는 전선 너머 러시아 후방을 공격하기 위해 필요하다면서 사거리 300㎞의 신형을 요구하고 있다.
무기 일부는 이르면 이번 주 운송 단계에 들어갈 수 있다. 민주당이 다수당인 상원이 23일쯤 예산안을 처리하는 즉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곧장 서명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예산 법안에는 에이태큼스도 명시돼 있다.
미국의 결단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럽의 추가 지원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2일 룩셈부르크에서 유럽연합(EU) 27개국 외교장관이 참석하는 외교이사회를 앞두고 회원국에서는 "모든 동맹이 무기 재고를 살피기를 바란다"(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 "우리(EU)도 숙제를 해야 한다"(토비아스 빌스트룀 스웨덴 외무부 장관) 등의 반응이 나왔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바라는 대로 적합한 무기가 제때 우크라이나에 도착하더라도 전세를 극적으로 바꾸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황에 변화가 있다 해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밀리던 상황에서 버티거나 맞서 싸울 수 있는 정도로 바뀌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고위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무기 지원은) 러시아 진격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이를 막을 수는 없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영국 BBC방송도 "미국의 무기 지원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특효약'은 아니다"라고 짚었다.
무기가 배치되기 전 공백을 틈타 러시아가 공격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전쟁연구소는 "앞으로 몇 주 동안 러시아의 미사일·드론 공격이 증가할 수 있고, 작전상 상당한 진격을 펼칠 위험이 있다"고 내다봤다. 공교롭게도 러시아 국방부는 미국 하원의 표결 다음 날인 21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州) 요충지 차시우야르와 고작 3㎞ 떨어진 보흐다니우카를 점령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