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꿀 천재에게 투자" 새로운 스타트업 투자 도입하는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

입력
2024.04.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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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셉션 스튜디오 방문 후 영감 받아
해외 투자까지 확대하는 글로벌 펀드 조성 목표

신생기업(스타트업)에 벤처투자사(VC)의 투자는 자금 조달을 넘어서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스타트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투자에 참여한 VC의 면면이 곧 스타트업의 성장 가능성을 예측하는 척도가 된다. 그만큼 명망 있는 VC의 투자가 스타트업에는 중요하다.

2013년 설립된 퓨처플레이는 국내의 대표적인 스타트업 육성업체(액셀러레이터, AC) 겸 VC다. AC는 예비 창업가나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해 초기 자금을 투자하고 육성하는 일을 한다. VC는 어느 정도 사업이 진행된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AC보다 많은 규모의 투자를 한다. 퓨처플레이는 두 가지를 겸하고 있다.

VC의 명성은 해당 VC가 만든 펀드에 어떤 투자자(LP)들이 참여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카카오, LG CNS, 은행권청년창업재단(d캠프), 삼성생명,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신한캐피탈, CJ ENM, 한국벤처투자, SM엔터테인먼트 등이 퓨처플레이가 만든 펀드에 투자자로 참여했다.

이를 통해 퓨처플레이는 지금까지 2,156억 원의 자금(AUM)을 운용하며 237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투자한 스타트업의 생존율은 91.8%다. 로켓을 발사하는 이노스페이스,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비트센싱,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의료기기 개발업체 뷰노, 뇌파를 이용한 소통 기구로 세계 최대 전자전시회 'CES'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은 룩시드랩스, 국내 6,000개 기업이 사용하는 채용 관리 솔루션을 만든 두들린, 각 은행의 대출상품을 비교해주는 금융기술(핀테크) 업체 핀다 등이 퓨처플레이에서 투자받았다.

특히 퓨처플레이를 창업한 류중희 공동대표는 기술이 뛰어난 딥테크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안목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업계에서는 사업 아이디어를 완성된 회사의 형태로 만드는 능력이 출중한 컴퍼니 빌더로 통한다.

그런 그가 기존 방법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스타트업 투자 방식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다. 바로 '천재를 위한 투자'다. '10년 내 인류의 삶을 바꿀 스타트업을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만든다'는 회사의 모토처럼 인류의 삶을 바꿀 뛰어난 천재를 찾아내 사업하도록 돕는 혁신적 투자다. 서울 왕십리로 퓨처플레이 사무실에서 류 대표를 만나 국내에 없던 투자에 대해 들어 봤다.


인셉션 스튜디오의 교훈 "와이콤비네이터 시대는 끝났다"

류 대표가 변한 계기는 암 투병이었다. 2022년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암에 걸려 약물 치료를 받았다. "병을 앓으면서 앞으로 더 산다면 지금과 차원이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축구선수로 잘 뛰었다면 이제는 축구가 과연 최선의 스포츠인지 생각하게 된 것이죠. 이제는 지난 10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스포츠를 만들어야 해요."

인셉션 스튜디오라는 미국 AC가 새로운 투자 방식 구상을 위해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인셉션 스튜디오는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이에요. AI 스타트업을 만들 사람들을 모아 모든 것을 지원하는 AI에 특화된 AC죠."

최근 그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인셉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인셉션 스튜디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가지만 잘 만나주지 않아요. 지인을 통해 겨우 만났죠."

인셉션 스튜디오를 다녀온 뒤 그는 "사실상 AC를 발명한 와이콤비네이터의 시대가 끝났다"고 느꼈다. 에어비앤비 등을 육성한 와이콤비네이터는 '챗GPT'를 만든 오픈AI의 샘 올트먼이 대표를 지낸 미국의 유명 AC다. "인셉션 스튜디오는 기부를 받아 투자금을 조성해요.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사람들이 앞다퉈 기부를 하는 바람에 돈이 남아돌아요. 이 돈으로 뛰어난 영감을 지녔으나 사업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사람들을 도와줘요. 투자에 대한 보상도 바라지 않아요. 아주 극단적인 형태의 투자가 등장한 것이죠. 이들을 만나고 더 이상 하늘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방식으로 투자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제는 천재가 사업하지 않아도 천재성을 발현할 수 있도록 만드는 투자가 중요해요."

류 대표를 놀라게 만든 것은 인셉션 스튜디오의 철저한 사람 중심 투자다. "뛰어난 영감을 지닌 창업자를 돕는 것을 보며 이제 투자의 구심점이 천재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이제 AI 덕분에 프로그래밍을 할 줄 몰라도 소프트웨어 사업을 할 수 있어요. 천재가 만든 AI가 산업을 바꾸고 있죠."


천재가 사업하도록 부추기는 투자

이렇게 되면 투자할 때 눈여겨보는 대상이 달라진다. "기술과 경영 모두를 잘하는 사람은 없어요. 지금까지는 우수한 기술자를 설득해 모을 수 있는 경영자에게 투자했는데 앞으로는 경영을 하지 못해도 기술이 뛰어난 천재에게 투자해 볼 생각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바꿔야죠."

그렇다면 세상을 바꿀 천재를 어떻게 알아볼까. 우선 그가 주목하는 것은 학계다. "발표 논문 등을 이공계 출신이 보면 대상자의 천재성을 쉽게 알아볼 수 있어요. 그러려면 투자심사역도 이공계 지식에 대한 전문성이 있어야죠."

지난 10년간 투자도 관련 있다. "학계에 있기 때문에 돈 벌지 못한다는 말이 가장 화나요. 미국에서는 그런 생각하지 않아요. 학계에서 훌륭한 업적을 쌓으면 자연스럽게 사업으로 이어져 돈도 많이 벌죠. 지금까지 퓨처플레이는 교수와 박사가 창업하면 무조건 투자했어요. 그래서 처음 창업했을 때 '공돌이 해방전선'으로 통했어요. 공대생들은 사업에 약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도록 만들고 싶었죠."

구상 중인 천재를 위한 투자 방식은 연내 등장할 전망이다. 이를 위해 천재를 위한 보상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 "천재에게 지분을 보상으로 나눠주는 시스템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어요. 기존 투자 방식으로는 천재에게 보상으로 회사 지분을 10% 이상 주기 힘들어요."

천재를 위한 보상을 위해 주식회사 형태를 벗어난 회사 설립 지원도 검토하고 있다. "다양한 모델을 고민 중이죠. 어떤 형태로 나올지 궁금해요."

혁신의 주체가 달라지는 것도 새로운 투자 방식 고민의 배경이 됐다. "앞으로 혁신의 주체는 기업이 아닌 개인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1인 기업이죠. 이렇게 되면 기업과 개인의 역할이 바뀔 겁니다."

10년 내 인류의 삶을 바꿀 스타트업들을 만든다는 회사의 모토도 달라질까. "스타트업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부 바뀔 수 있어요. 스타트업만 혁신을 하는 것은 아니죠."


엘리트주의 비판 우려

하지만 여전히 난제는 남는다. 과연 지원 대상을 발굴할 때 천재성을 알아보는 문제와 사업의 지속성 여부다. 류 대표도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잘 맞는 사업 형태를 찾아야죠."

자칫 잘못하면 엘리트주의라는 비판이 따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무조건 천재성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천재를 키우는 개념이죠. 오히려 천재들이 희생하는 겁니다. 예술가들이 대표적이죠. 가수 아이유가 은퇴하면 더 이상 그의 새로운 노래들을 만날 수 없잖아요. 그런 점에서 천재들이 만드는 세상을 이끄는 기술은 예술과 다를 바 없어요."

공연과 음반판매 등으로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해 '스위프트노믹스'라는 신조어를 만든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효과를 단적인 예로 들었다. "스위프트의 성공은 단기간에 그의 노래를 전 세계에 전파한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 덕분이죠. 천재의 능력과 기술이 공생한 사례죠."

류 대표가 주목하는 분야는 AI다. "인류는 노동이 AI와 로봇으로 대체되는 시대를 살고 있어요. 다음 단계로 AI가 신약을 만들거나 기계를 설계하는 등 인간의 지성을 대체하는 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 점에서 고도의 지적 노동을 대체하는 범용 AI(AGI) 분야에 투자하고 싶어요. 최근 아이디어오션에 투자한 것도 같은 맥락이죠. 원하는 대로 기계를 설계할 수 있는 AI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죠."


스타트업 생태계 위해 정부 역할 재고 필요

어린 시절 TV 만화영화를 보며 로봇을 만드는 꿈을 키운 류 대표는 카이스트에서 전기 및 전자공학으로 학사부터 박사학위까지 받고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카이스트 경영대학원과 문화기술대학원 등에서 겸직 교수로 일했다. 이후 다양한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냈고 얼굴 인식 기술업체 올라웍스를 창업했다가 미국 인텔에 매각해 화제가 됐다.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세계적인 기업에 인수된 사례다.

올해 목표는 천재를 키우는 사업과 함께 해외 투자까지 감안한 펀드를 만드는 것이다. "해외 투자자들을 모아 국내외 스타트업에 골고루 투자하는 펀드를 만들 계획입니다. 최근 스타트업 투자를 늘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을 주목하고 있어요."

류 대표는 '미스터 쓴소리'로도 통한다. 싫은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탓이다. 그는 최근 위축된 스타트업 투자를 위해 정부 역할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정부가 세금으로 펀드를 만드는 등 민간과 경쟁하면 안 돼요. 지금 돈이 많은 곳은 유보금을 갖고 있는 대기업이에요. 그런데 대기업이 펀드 투자를 하지 않아요. 그러면 정부가 원인을 찾아 법이나 세금 등을 조정해 해법을 내놓아야죠. 심판이 답답하다고 경기장에서 공을 들고 뛰면 안 되죠."

최연진 IT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