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때리던 이란, '히잡 단속' 칼 빼들고 반정부 여론 다잡기

입력
2024.04.23 08:00
이스라엘 타격 후 연일 '히잡 단속' 강화
"통제 위해 단속·엄벌… 여성과 전면전"

이스라엘과 공격을 주고받은 이란이 이번에는 자국 내 반(反)정부 여론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 2022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의 도화선이 됐던 히잡 단속을 다시 강화하면서다. 이스라엘과의 긴장이 극에 달한 가운데 내부 비판을 찍어 누르려는 시도로 보인다.

새로운 히잡 단속 작전 이어 기관 창설까지

21일(현지시간) 자유유럽방송(RFE/RL)에 따르면 이란 혁명수비대(IRGC)의 하산 하산자데 테헤란 사령관은 이날 여성의 복장 단속을 위한 새로운 기관을 창설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이란 당국이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은 여성들을 체포하는 새로운 작전 이른바 '누르(Noor·빛이라는 뜻의 이란어) 플랜'을 지난 14일부터 시행한 데 따른 조치다.

이 단속 작전은 테헤란과 주요 도시를 정기적으로 순찰하며 여성의 복장을 규제하는 도덕경찰의 경고를 받고도 이를 무시한 여성을 구금하는 게 목표라고 미국 ABC방송이 이란 INSA통신을 인용해 보도한 바 있다. 테헤란 경찰서장은 지난 13일 "(새 작전은) 히잡과 순결에 대한 사회적 금기를 깨고 히잡 규정을 위반하려는 사람들과 맞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영국 BBC방송은 전했다.


이란은 지난 13, 14일 이스라엘 영토를 직접 타격한 후 연일 히잡을 겨냥한 강경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외부의 적에 맞서기 위해 내부 단속의 고삐를 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란 반체제 매체 '이란 인터내셔널'은 "전 세계가 (이란·이스라엘 간) 대규모 충돌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들이 시위에 나서지 못하도록 겁을 주기 위한 의도"라고 짚었다.

여성 구금 늘어… "정권, 통제 위해 여성과 전면전"

실제로 이란 정권은 도덕경찰을 대거 투입해 히잡 단속·엄벌에 열 올리고 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도덕경찰에게 맞은 상처 사진이나 도덕경찰이 한 여성을 승합차에 강제로 태우는 모습의 동영상 등이 잇따라 올라왔다. 이란 전역에서 도덕경찰에 의해 폭력적으로 구금되는 여성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미국에 본부를 둔 이란인권단체(CHRI)는 전했다.


2022년 시위 당시 히잡을 불 태운 후 의문사한 여고생 니카 샤카라미(당시 16세)의 언니 아이다(22)도 그중 한 명이다. BBC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 나스린은 SNS를 통해 아이다가 지난 17일 테헤란에서 머리카락을 가리지 않은 혐의로 도덕경찰에 체포돼 구금 중이라고 밝혔다.

202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현재 테헤란 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란의 여성인권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는 21일 음성 메시지를 통해 "히잡 강제는 정권이 권력과 통제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라며 "이슬람 정권이 이란 여성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영은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