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국립오페라단의 초연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인 벤저민 브리튼의 '한여름 밤의 꿈'이 막을 내렸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바탕으로 바로크부터 20세기까지의 음악 어법을 짜임새 있게 구성한 유쾌하고 완성도 높은 오페라 부파(희극 오페라)였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직관적 연출, 무대가 움직일 때마다 공간을 꽉 채운 조명이 돋보였고 15명 넘게 출연하는 성악가들이 전부 기대 이상의 노래와 연기를 보여줘 완성도 높은 무대를 만들었다.
브리튼의 음악은 로맨티시즘에서 벗어나면서도 20세기 무조음악(악곡의 중심이 되는 조성을 쓰지 않는 음악) 사조에 완전히 정착하지는 않은 경계에서 다양한 음악 어법을 보여준다. '한여름 밤의 꿈'에선 등장인물별로 다양한 음악적 특징과 색채를 부여하는데, 배합이 흥미롭다. 요정 그룹에는 17, 18세기에 대스타였다가 19세기에 사라진 카운터테너를 소환해 요정의 신 '오베론'을 노래하게 한다. 진은숙도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카운터테너를 등용하는데, 이들은 이전 시대처럼 현란한 기교를 표현하기보다는 서사를 이끌어가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역할에 더 집중한다. '오베론'과 바로크 시대 악기인 하프시코드를 함께 등장시켜 신비로운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그를 보조하며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는 요정 '퍽'에게는 건반 악기 첼레스타, 하프, 스네어드럼을 덧입혀 음색으로 판타지 캐릭터를 완성한다.
연인 그룹의 파트너 설정도 흥미로웠다. 파트너를 바꾸는 이야기를 다룬 모차르트의 오페라 부파 '코지 판 투테'의 구조와 닮았다. 오페라에선 소프라노, 테너가 짝을 이루고, 바리톤, 메조 소프라노, 베이스는 갈등 유발자로 등장한다. '한여름 밤의 꿈'과 '코지 판 투테'에선 처음부터 소프라노와 바리톤, 메조 소프라노와 테너가 각각 커플이다. 이들의 이중창은 '사랑의 작대기'가 한 번씩 꼬이면서 다른 음악적 조합을 이룬다.
20세기 인기 오페라 중에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 같은 화성이 화려한 것도 있지만, 레오시 야나체크나 브리튼의 작품처럼 새로운 음색, 구조의 변화, 언어의 의미, 극의 재미를 배가시키며 감상하는 작품도 있다. 브리튼 작품에선 가창력만큼이나 고유한 음색이 캐릭터와 잘 어울리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번 오페라의 높은 완성도는 이런 점을 고려한 국립오페라단의 캐스팅이 큰 역할을 했다.
오페라는 몇 명만 잘한다고 감동을 주는 장르가 아니다. 노래, 연기, 작품을 소화해 내는 세련된 감각을 두루 갖춘 성악가들이 이상적 앙상블을 이뤄냈다. 오베론 역의 카운터테너 장정권, 티타니아의 소프라노 이혜지, 메조 소프라노 정주연, 테너 김효종, 바리톤 박은원, 테너 강도호 등 모든 성악가들이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요정 '퍽'을 연기한 배우 김동완은 놀라웠다. 음색과 발성도 좋았지만 '퍽'의 인위적이지 않은 가벼움을 담백하게 잘 살려 냈다. 의지보다는 실수로 재앙을 낳는 역에 제격이었다.
젊은 프로덕션으로 20세기 대표 오페라를 무대에 올린 것도 의미가 깊다. 오페라가 음악적으로, 서사적으로 어떤 변신과 진화를 꾀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국립오페라단의 '초연 3부작'은 이제 코른골트의 '죽음의 도시'를 남겨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