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의 1분기 매출에서 중국이 절반에 육박하는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첨단 반도체 장비 등을 중국에 수출하지 말라"고 네덜란드 등 동맹국들을 압박하고 있으나, 여전히 중국이 ASML의 최대 고객임이 확인된 것이다.
ASML은 17일(현지시간) 올해 1분기(1~3월)에 매출 52억9,000만 유로(약 7조7,630억 원), 순이익 12억2,000만 유로(약 1조7,900억 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4분기보다 각각 27%, 37.4% 급감한 수치다.
매출을 지역별로 보면 중국이 49%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한국(19%)을 비롯해 대만(6%), 미국(6%) 등의 비중을 다 합쳐도 중국보다 적었다. 특히 중국의 매출 비중은 직전 분기(39%)보다도 10%포인트나 증가했다. 지난해 4분기 ASML 장비 구매에 약 22억 유로를 쓴 중국은 올 1분기 19억 달러를 써 크게 차이가 없었던 반면 한국과 대만, 미국 등은 지출을 최대 절반 가까이 줄였기 때문이다.
ASML 매출에서 중국의 비중이 더 커진 것은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구형 장비를 사재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으로부터 대중국 장비 수출 통제 압박을 받고 있는 네덜란드 정부가 ASML의 구형 장비 수출마저 막기 전에 최대한 많은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형 장비는 인공지능(AI) 칩 같은 첨단 반도체는 제조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가전이나 자동차, 무기 등에 쓰이는 범용 반도체는 만들 수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ASML이 독점하고 있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뿐 아니라 그보다 기술 수준이 한 단계 낮은 심자외선(DUV) 장비에 대해서도 올 초부터 중국 수출을 제한 중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ASML이 이미 중국에 판매한 장비와 관련한 유지·보수 서비스도 제한하는 방안이 미국과 네덜란드 정부 사이에 논의되고 있다.
ASML은 미국 측의 압박으로 올해 중국 매출의 15%가량이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 전망하면서도, 중국 기업들의 강한 수요는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는 "현재로선 중국 업체에 판매한 장비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자발적으로 중국과 거리를 둘 의향은 없음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