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홍준표 대구시장을 만나 4·10 총선 참패 이후 국정 기조와 인적 쇄신 방안에 대해 논의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공교롭게 홍 시장이 총선 참패 책임을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는 상황에서 성사된 만남이라 그 배경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또 홍 시장이 '김한길 총리·장제원 비서실장'을 추천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면서 전날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기용설에 이어 혼선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18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16일 서울에서 홍 시장과 4시간가량 비공개 만찬 회동을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선거 후 여러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만남이 이뤄진 것으로 안다"며 "홍 시장과만 (접촉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권 원로를 두루 만나는 일상적인 일정 중 하나로, 확대 해석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총선 참패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한 당일 홍 시장과 회동을 가졌다는 점에서 향후 정국 운영 방안에 대한 심도 깊은 얘기가 오고 갔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자리를 두고 윤 대통령과 경쟁했던 홍 시장은 정부 출범 후엔 쓴소리를 이어왔다. 다만 총선 전후로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운 한 전 위원장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윤 대통령 책임론을 펴는 여당 인사들에게 날을 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 이날도 홍 시장은 한 전 위원장을 겨냥해 "윤 대통령 극렬 지지 세력 중 일부가 지지한 윤 대통령 그림자였지 독립 변수가 아니었다"며 "그것도 모르고 자기 주군에게 대들다가 폐세자가 됐을 뿐, 당내외 독자 세력은 전혀 없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반면 전날 홍 시장은 '친윤석열계 당대표를 세우기 위한 규칙'이라는 비판을 받은 '당대표 선거 당원 100% 룰'을 옹호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날 회동 사실이 알려진 직후 여권 안팎에서 윤 대통령이 홍 시장에게 국무총리를 제안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홍 시장은 '오보'라고 밝혔다. 대신 홍 시장은 윤 대통령에게 차기 총리 후보로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을, 비서실장 후보로는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을 추천한 사실을 공개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친윤계 핵심인 장 의원 기용에 대한 야당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홍 시장이 자락을 까는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홍 시장까지 끼어들면서 총리 인선은 더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김한길 위원장부터 김병준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박주선 전 의원, 권영세·주호영 의원은 물론 비서실장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이정현 전 의원까지 상당수가 후임 총리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대통령실이 공식적으로 반박한 박영선 전 장관 투입설도 꺼지지 않고 있다. 이날 미국에서 일본을 거쳐 귀국길에 오른 박 전 장관은 페이스북에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서문을 인용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너무도 중요한 시기여서 협치가 긴요하다"며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두 도시 이야기처럼 보이고 있다"고 적었다. 양극단으로 치닫는 정치 환경을 비판한 것인데, 자신을 비롯한 야권 인사 기용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으로도 해석됐다.
박 전 장관 중용 여부에 대해 한 여권 관계자는 "전날 해프닝이 없었다면 야당 임명 동의 과정을 감안해 '박영선 총리' 카드를 꺼내는 것도 그럴 듯해 보였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비선 논란까지 제기된 상황에서 그를 선택하는 자체가 악수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