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원유 매장량 세계 1위인 중남미 국가 베네수엘라의 석유·가스 수출에 대한 제재를 복원한다. 독재로 악명 높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오는 7월 대선을 앞두고 야권 후보를 탄압한 데 따른 조치다. 앞서 미국은 공정한 선거를 치르기로 약속하는 대가로 베네수엘라의 석유와 가스 부문 제재를 일정 기간 풀어줬다.
미국 국무부는 17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베네수엘라의 석유·가스 거래를 승인하는 일반 면허(라이선스 44)가 오는 18일 만료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부정선거를 이유로 마두로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2020년 부과했던 제재가 다시 발효된다.
미국에 가로막혔던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출이 재개된 것은 마두로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야권과 자유롭고 공정하게 대선을 치르기로 '바베이도스 협정'을 맺으면서다. 미국은 그 후속 조치로 6개월짜리 면허 발급을 통해 베네수엘라산 원유 거래를 허용했다. 만료를 앞둔 면허를 연장하지 않겠다는 게 미국의 이번 결정이다.
미 국무부는 "베네수엘라의 현재 상황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마두로 대통령이 바베이도스에서 서명한 선거 로드맵에 따른 약속을 완전히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고 제재 재개 사유를 밝혔다. 장기집권을 노리는 마두로 정권이 정적 탄압에 나선 탓이다. 마두로 정권은 야권 유력 대선 후보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56)의 과거 반정부 활동 등을 문제 삼아 대선 출마 자격을 박탈했다. 마차도의 대체 후보로 지명된 코리나 요리스 전 교수의 후보 등록도 금지됐다. 마두로 대통령은 과거 재임 중 저지른 인권 탄압 등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 수사도 받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고심은 깊어만 간다. 이번 제재 복원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의 가장 큰 골칫거리와 얽혀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짚었다. 첫째 인플레이션이다. 블룸버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물가가 통제되고 있다는 확신을 유권자들에게 주려고 노력하는 동안에도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올해 17% 뛰어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며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입을 제한하면 연료 가격은 더 오를 수 있다"고 전했다.
두 번째 이민 문제다. 미국의 제재로 베네수엘라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수백만 명이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미국 대선의 주요 쟁점 중 하나로 떠올랐을 정도다. 베네수엘라의 최근 주요 수출품은 석유가 아닌 인력이란 말도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가구 약 3분의 1은 해외에서 송금을 받고 있다.
베네수엘라와 러시아 간 밀착을 부추기는 역효과도 낳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 2월 베네수엘라를 방문해 마두로 정권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한 바 있다.
베네수엘라에 민주주의를 심으려는 미국의 노력도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NYT 편집위원인 파라 스톡먼은 17일 칼럼을 통해 "이번 조치는 미국 영향력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며 "독재자는 미국의 제재를 받든 안 받든 독재를 한다. 대부분 제재는 그들의 권력 장악력을 강화한다"고 했다.
미국의 제재에도 베네수엘라는 큰소리치고 있다. 페드로 텔레체아 베네수엘라 석유부 장관은 이날 미국 CNN방송과 인터뷰에서 "이번 제재와 중동 전쟁으로 인해 유가가 급등하면 이는 미국의 유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제재로 인한 피해는 베네수엘라에만 국한되지 않고 국제사회 전체에 미칠 것이며, 베네수엘라는 제재가 있든 없든 계속 성장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