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협의체도 거부하는 의사들… 대화로 해법 도출 더 어려워지나

입력
2024.04.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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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및 여야, 사회적 협의체 구성에 공감
의협 비대위 "김윤 교수 참여하면 보이콧"
내달 말 내년도 의대신입생모집요강 발표

총선이 끝나고 정치권이 ‘사회적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며 의정 갈등 중재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의사들이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협상으로 해법을 도출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고 있다. 2025학년도 의대입시전형 계획이 발표되는 다음 달 말까지 이런 대치가 계속되면서 의료공백이 최소 한 달 이상 더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의대 증원을 멈추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구에서 새로 논의할 수 있도록 방침을 바꿔 달라”고 재차 요구했다. 의사들은 여당의 총선 참패로 의대 증원이 좌초할 것이라 기대했으나, 전날 윤 대통령은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에는 더 귀 기울이겠다”며 정책 추진 의지를 재확인했다.

의사들은 그러면서도 정부가 준비 중인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비롯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보건의료계 공론화 특별위원회’, 야권 비례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 제시한 ‘민·의·당·정 4자 협의체’,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내놓은 ‘범사회적 의료개혁 협의체’ 등 사회적 대화 기구 구성에는 미온적이다. 김성근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아 참여 여부를 답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의협은 또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더불어민주연합 소속 김윤 당선자를 거론하면서 “김 당선자가 협의체에 참여하면 보이콧할 것”이라고도 했다. 김 당선자는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로 의사 수 확대 필요성을 주장해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들로부터 공격받고 있다. 심지어 임현택 의협 차기 회장 당선자는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김윤이 의원직 사퇴하면 (민주당이 제안한 특위 참여를) 고려해 보겠다”고 주장했다.

의사들이 여야 정당, 정부, 시민사회, 환자단체 등 이해 당사자들이 동의하는 사회적 대타협 방식과 거리를 벌리는 것을 두고 사실상 의정 간 일대일 대화를 요구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대위 관계자가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의료계와 관련이 없는 국민들은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정부와 똑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나아가 의사들은 증원 원점 재검토, 증원 절차 중단, 보건복지부 장·차관 파면 등으로 정부가 협상에 진정성을 보여야 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공의 행정처분을 보류하고 증원 규모 조정 여지까지 열어 둔 정부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들이다. 의대 증원은 총선 결과와 무관하게 국민 지지가 높은 데다가 윤석열 정부의 ‘4대 개혁’ 반열에 오른 의료개혁의 전제 조건이라 되돌릴 경우 후폭풍이 거셀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학교별 의대 정원 배분을 완료하는 등 절차가 상당히 진척된 상태다. 각 대학이 변동된 정원을 반영해 이달 말까지 정원 조정 신청을 하면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심의를 거쳐 다음 달 말에는 내년도 의대 신입생 모집요강이 발표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이제 의대 증원은 대통령도 뒤집을 수 없다”며 “행정 절차가 진행된 정책을 백지화하면 고등교육법 위반이라 오히려 학부모와 수험생으로부터 소송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하더라도 내년이 아닌 2026년도 정원 규모를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그래야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비상진료체계를 강화하며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 38곳과 공공의료기관 37곳에서 비상진료를 위해 신규 채용한 의사 591명과 간호사 878명에 대해 인건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향후 지원 대상을 전공의 수가 많은 종합병원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이달 중 종료할 예정이었던 △1, 2차 의료기관 전원 시 환자 구급차 비용 지원 △경증 비응급 환자 분산 시 정책 지원금 제공 사업 등도 연장 시행하기로 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이달 25일부터 의대 교수 집단사직 효력이 발생한다고 알려지면서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다만 대부분 교수 비대위 차원에서 사직서를 취합해 두고 실제로 제출된 사례는 많지 않아 의료공백이 크게 악화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표향 기자
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