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탈(脫)중국 계획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만 및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등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사이 갈등이 갈수록 심화하자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리는 모습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찾아 투자 가능성을 거론하며 공을 들였다.
17일 AP통신에 따르면 쿡 CEO는 전날 하노이에서 팜민찐 베트남 총리와 만나 베트남 투자를 늘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애플 제품에 베트남 개발자가 참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현지 공급업체와의 협력, 교육 기회 확대 지원 등을 통해 베트남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이에 찐 총리는 “정부 내 애플 지원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화답했다.
쿡 CEO는 구체적인 투자 액수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같은 날 저녁 방송된 국영 VTV와의 인터뷰에서 “2019년 이후 애플은 베트남 약 150개 공급업체에 400조 동(약 22조 원)을 썼고, 애플 제품의 주요 부품 상당수가 베트남에서 생산된다”며 “베트남에서 큰 기회를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기존보다 더 많은 자금을 쏟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튿날인 17일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건너가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만났다. 로이터통신은 “쿡 CEO가 이 자리에서 인도네시아 내 애플 생산 공장 설립 검토 방침을 밝혔다”고 전했다.
쿡 CEO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애플은 베트남에 직접 공장을 짓지는 않았지만, 대만 폭스콘이나 미국 인텔 등 26개 협력업체의 베트남 현지 법인을 통해 아이패드, 에어팟 등을 생산하고 있다. 대부분 기존 공급망이었던 중국 남부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북부에 위치했다. 인도네시아에는 아직 애플 제조 관련 시설이 없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쿡 CEO의 동남아행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을 다각화하려는 애플의 노력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동남아 시장 확대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경제 매체 CNBC는 “이번 방문은 중국 내 매출 부진으로 애플 성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이뤄졌다”며 “새로운 시장에서 매출을 늘리려는 목적”이라고 짚었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올해 첫 6주 동안 중국 내 아이폰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 급감했다. 중국 대신 젊은 인구가 많고 경제 성장 가능성이 큰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적극 공략하기로 했다는 의미다. 인도네시아(약 2억8,000만 명)와 베트남(약 1억 명)은 30대 이하 청년층 비율이 전체 인구 절반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