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 된 유리병 콜라 지켜줘" 북극곰의 호소

입력
2024.04.17 15:50
유리병 재사용 땐 폐기물·탄소배출량 감소
글로벌 코카콜라 "2030년까지 25% 재사용"
국내 음료기업은 관련 계획 전무

“재사용병 콜라 주세요.” 17일 오전 서울 종로 한복판에 뒤뚱거리며 나타난 북극곰은 입을 앙다문 채 피켓을 들었다. 1993년부터 코카콜라 광고에 출연해 온 30년 차 베테랑 모델이자 멸종 위기 동물인 북극곰은 한국에서 사라진 유리병 콜라를 애타게 찾았다. “편의점에 가도 식당을 가도 페트병 콜라밖에 안 보인다”는 것이다.

서울환경연합, 한살림 등이 모인 ‘유리병재사용시민연대’는 “한국에서 유리병 콜라가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뜻으로 이날 북극곰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은 "재사용 유리병을 활용한 코카콜라 유통을 확대하라"며 국내 코카콜라 제조 및 유통을 담당하는 엘지생활건강에 시민 6,040명의 서명이 담긴 성명서를 전달했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흔하게 볼 수 있던 유리병 콜라는 어느덧 희귀종이 되었다. 페트병 콜라가 그 자리를 대체했기 때문이다. 둘의 차이는 단순히 재질을 뛰어넘는다. 유리병은 재사용이 용이하지만 페트병은 일회용이다. 유리병을 재사용할수록 플라스틱 쓰레기는 물론 온실가스 배출량까지 줄일 수 있다. 일본 유리병 협회의 연구에 따르면 500㎖ 용기 기준으로 유리병을 5회 이상 재사용하면 어떤 재질의 일회용 용기와 비교해도 탄소배출이 적었다. 20회 이상 재사용 시 페트병 대비 탄소배출량이 30%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 연대가 ‘2023 용기 재사용 탐정단’ 활동을 통해 조사한 결과, 소주 맥주 등 주류를 제외한 음료 유리병의 재사용률은 10%에도 못 미쳤다. 기술보다는 의지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롯데칠성, 코카콜라 등 국내 식음료업체 10곳 모두 유리병 재사용 계획이 없었다. 최혜영 한살림연합 환경활동회의 의장은 “유리병을 재사용하려면 가볍고 내구성 있는 병을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한 설비 투자가 필요한데 국내 기업은 이런 변화를 원치 않는다”며 “정부 역시 재사용 시스템을 장려해야 하지만 기업 몫이라고 방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연대는 코카콜라의 글로벌 본사가 2030년까지 자사 음료 제품의 최소 25%를 재사용 병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내놓고 시행 중이지만 한국만큼은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동이 서울환경연합 처장은 “코카콜라 라틴아메리카법인이 2018년부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에 적용한 재사용 용기는 평균 25회 사용되면서 플라스틱 사용량의 90%, 물 소비량의 45%, 일회용 페트병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의 47%를 줄였다”며 “국내에도 이미 회수 체계가 갖춰진 만큼 글로벌 정책에 맞춰 재사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엘지생활건강 관계자는 “식당에 공급되는 음료는 지금도 재사용 유리병을 쓰고 있지만, 소매점이나 편의점을 통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경우 회수가 어려워 플라스틱으로 대체하게 됐다”며 “향후 코카콜라사와 협의해 재사용 및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에 대해 결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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