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에 절박함이 실종됐다. 총선에서 범야권에 192석을 내주며 참패했는데도 일주일째 '의견 청취'에 골몰할 뿐 쇄신과 변화 움직임은 찾아보기 어렵다. 상황을 바꿔야 할 지도부와 당 주류는 원론적 수준의 언급에 그치고 있다. 일부 초선의원과 밖에서 지켜보는 원로들이 쓴소리를 냈지만 별반 반향은 없다. 선거 패배 후 몸부림치던 2018년, 2020년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윤재옥 당대표 권한대행은 17일 지역구 초선 당선자, 당 상임고문단과 연달아 만났다. 15일 4선 이상 중진 간담회, 16일 당선자 총회에 이은 의견수렴 절차다.
이 자리에선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을 향한 질타가 쏟아졌다. 정의화 상임고문은 이번 참패를 "윤 대통령의 불통, 당의 무능에 대한 국민적 심판"으로 규정하고 "(사안에 대한) 늦은 판단, 의정 갈등에서 나타난 독선적인 모습이 막판 표심에 나쁜 영향을 줬다"고 진단했다. 이어 "윤 대통령께선 이제 대통령실 스태프나 주변 분들에게 언로를 열어서 허심탄회한 자유토론 이상이 가능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면서 "당은 필요하면 직언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흥수 상임고문은 "국정 스타일을 바꾸려면 정치적인 감각이 많은 참모가 필요하다"며 "야당과의 협력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고동진 서울 강남병 당선자는 취재진과 만나 "회사 체질이었으면 아마 벌써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갖고 막 움직이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지도부의 메시지는 원론적 수준을 맴돌았다. 윤 권한대행은 상임고문 간담회에서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더 나은 모습으로 당을 바꾸는 데 당력을 모으고 있다"면서 "특히 어제 당선자 총회에서는 국민의힘과 국민의미래가 합당할 것을 결의했다"고 했다.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당연히 진행되는 위성정당 합당 절차를 굳이 언급한 것이다. 초선 간담회에선 "누가 잘했느니 누가 못했느니 이런 분위기가 되면 약해 보이고, 틈이 보이고, 지리멸렬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총선 참패 이후 일주일간 확정한 건 △실무형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6, 7월쯤 전당대회 개최 △5월 초 신임 원내대표 선출 정도다. 비대위원장을 윤 권한대행이 맡을지는 그의 결단에 달려있다. 과연 선거에 패한 정당이 맞는지 한가하게 비칠 정도다.
이 같은 모습은 '그래도 집권여당'이라는 안일함 때문으로 분석된다. 야당일 때는 위기감이 훨씬 강했다. 4년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지도부는 총선 참패 일주일 만에 현역의원, 당선자 전수조사를 실시해 '김종인 비대위 체제 전환'을 발표했다. '여의도 차르'로 통하는 김종인 전 위원장을 통해 고강도 혁신을 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당내 여러 반발에 부딪혔지만, 결국 김 전 위원장이 실권을 잡았고 이는 1년 뒤 서울시장 재보선 압승이란 결과로 이어졌다.
그에 앞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2018년 지방선거에서 패했을 때는 현역 의원들이 국회 본청에서 무릎을 꿇고 반성문을 낭독했다. '보여주기 쇼'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분명 인상적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반면 여당이었던 2016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총선 패배 후에도 친박근혜(친박)계와 비박계 간 갈등 탓에 이번처럼 즉각적인 쇄신 없이 리더십 공백 상태가 이어졌다. 이는 보수정당의 전국단위 선거 4연패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