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기소유예 사건' 헌재 취소 심리 전에 다시 본다

입력
2024.04.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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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유예엔 항고 없어 헌재까지 가야
검찰이 헌재 사건 선제적으로 검토해
불합리한 점 발견되면 무혐의로 전환

기소유예. 범죄 혐의가 있어도 사안이 경미한 사건이나 피의자에게 고려해야 할 특성(연령·반성·환경 등)이 있는 경우, 기소하지 않고 용서해 주는 검사의 처분을 말한다. 불기소라는 점에서 무혐의 처분과 같아 보이지만, 유죄를 전제로 한 처분이라 일정 기간 수사경력자료에 기록이 남는다는 점에서 찜찜하다. 죄 지은 사람에겐 다행일 수 있지만, 정말 억울한 이들에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다.

하지만 문제는 피의자가 기소유예(유죄)를 수긍할 수 없다 해도 검찰 단계에서 불복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점. 관련법상 기소유예 처분 당사자는 항고(검사 처분에 불복)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유일한 방법은 헌법재판소까지 가서 기소유예 처분 취소 결정을 받아오는 것이다.

이런 번거로움을 막기 위해, 기소유예 불복 당사자가 헌재에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엔 검찰이 해당 처분의 적법 여부를 다시 점검하는 방안이 시행된다. 잘못을 먼저 바로잡아 신속한 구제를 돕기 위해서다. 11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대검찰청은 9일 일선 검찰청 의견 조회를 위해 이런 내용의 '인권보호를 위한 기소유예 처분 점검' 공문을 하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헌재, 매해 40건 기소유예 취소

전국 검찰청에서 나오는 기소유예 처분은 해마다 약 20만 건(지난해 기준). 처벌을 받지 않고 전과도 남지 않는 '선처'지만, 무죄를 주장하며 불복하는 당사자들도 적지 않다. 경우에 따라선 직장에서 징계를 받는 등 인사상 불이익이 따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기소유예는 항고 절차가 없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어쩔 수 없이 헌재를 통해 불복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실제 헌재에는 해마다 500건 이상의 기소유예 처분 취소 사건이 접수된다고 한다. 이 가운데 194건(최근 5년 평균)이 정식 심판에 회부되고 그중 약 20%가 수사 미진, 법리 오해를 이유로 인용된다. 전체 기소유예 처분 규모에 비하면 매우 적지만, 기소유예가 헌재에서 다수 취소된다는 사실은 검찰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 왔다.

문제 발견 땐 처분 내용 변경

그래서 검찰은 앞으로 일선청 인권보호관에게 기소유예 처분 점검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점검 대상은 헌재가 불복 소송의 청구 요건 등을 사전심사한 뒤 정식 심판에 회부한 사건이다. 헌재는 심판 회부 시 기소유예 처분 검사에게 30일 이내 답변서 제출을 요구하는데, 이때 기존 입장을 반복하는 기계적 답변 대신 실질적 리뷰를 진행해 판단을 다시 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해당청 인권보호관이 선제 점검을 실시해 당시 기소유예 처분이 적절했는지를 다시 판단하게 된다. 점검을 끝낸 인권보호관은 각 지검장이나 지청장에게 검토 보고서를 제출하고, 보고받은 지검장·지청장은 인권보호관으로 하여금 △'기소유예'에서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의 주문을 변경하거나 △필요한 재수사를 진행하도록 지시할 수 있다.

헌재까지 가면 취소 2년 걸려

헌재의 기소유예 취소 소송은 경우에 따라 2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검찰이 직접 나서 선제적으로 처분의 내용을 변경하는 경우에는 기간이나 절차가 단축된다.

검찰이 먼저 기소유예를 재점검하면 헌재가 헌법 위반이나 기본권 보호라는 본연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부수 효과도 있을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 당사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기소유예 사건에 대한 점검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일선 검사들이 불기소 처분을 할 때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무혐의)인지 △경미한 경우(기소유예)인지 더 명확히 판단하도록 하는 장치로도 기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해당 방안은 일선청 의견 수렴을 마친 뒤 조만간 시행될 예정이다.

최동순 기자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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