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뒤 공개한 악화일로 ‘나라 가계부’… 이게 건전재정인가

입력
2024.04.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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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가 87조 원 적자를 기록했다. 예산안보다 29조 원이나 불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자 비율은 재정준칙(3%)을 크게 웃돌았고, 국가채무 비율은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건전재정을 신줏단지 모시듯 강조해 온 윤석열 정부의 성적표라곤 믿기 힘든 수준이다.

정부는 어제(11일) 국무회의를 열어 ‘2023 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를 심의∙의결했다. 국가재정법은 매년 4월 10일까지 전년도 결산보고서를 의결하도록 하는데 법정시한을 하루 넘긴 것이다. 총선에 악재로 작용할 거라는 판단 때문에 발표시점을 늦췄다는 의혹에도 정부는 가타부타 설명이 없다. 그만큼 결산 결과가 심각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실제 보고서를 보면 ‘나라 가계부’는 일제히 악화일로다. 예상을 뛰어넘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로 윤 대통령이 법제화를 추진해 온 재정준칙은 스스로 지키지 못한 꼴이 됐다. 재정준칙은 적자폭을 매년 GDP의 3% 이내로 제한하는 걸 골자로 하는데, 작년엔 한참 넘어서는 3.9%였다. 결국 적자를 빚으로 메우면서 나랏빚도 60조 원가량 불어났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50.4%)이 사상 처음 50%를 돌파했다는 건, 경제 규모 확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빚 증가 수준을 넘어섰다는 의미다.

씀씀이가 커진 건 아니다. 코로나19 지원 조치 종료로 지출도 줄었지만 세수가 이보다 훨씬 많이 줄었다. 역대 최대 감소폭(77조 원)이다. 경기 둔화 여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대규모 감세 영향이 컸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법인세 감세가 세수 감소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8%에 달한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윤석열 정부는 선심성 감세를 쏟아내면서도 건전재정을 강조해 왔다. 경기 둔화로 돈 쓸 일이 많아지는 와중에 양립 불가능한 정책들이었다. 총선 앞에 24차례나 쏟아낸 민생토론회 정책을 일부라도 이행하자면 재정 압박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세입을 늘리고 선심성 정책을 과감히 구조조정하는 등 국가 가계부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윤 정부가 그렇게 비판했던 문재인 정부보다 더 심한 재정 악화를 부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