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 바로 보기 | 12세 이상
어려서부터 스타였다. 형제들과 구성한 그룹 잭슨파이브로 인기몰이를 했다. 청소년기를 겪으며 고뇌에 빠졌다. 사람들이 자신을 앞에 두고도 그가 어디 있냐며 찾았기 때문이다. 어린 스타의 귀여운 외모만 기억하는 이들은 성인이 돼가는 그를 몰라봤다. 그는 잭슨파이브로부터 온전히 독립하고 역사상 음반을 가장 많이 판 가수가 되고 싶었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1958~2009)의 꿈은 원대했고, 결국 현실이 됐다.
잭슨은 1979년 앨범 ‘오프 더 월’로 홀로서기를 시도했다. 21세 때다. 음악적 완성도가 높았고, 1,000만 장이나 팔았으나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팝 음악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었다. 당대 최고 대중음악인 퀸시 존스를 프로듀서로 영입했다. 1982년 내놓은 ‘스릴러’에는 남다른 야심을 담았다. 수록곡 모두를 히트곡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팝과 디스코, 신스팝, 리듬앤드블루스(R&B), 록, 펑크 등을 아우르는 노래 7곡이 담겼다.
잭슨의 목표는 하나하나 이뤄졌다. 7곳 모두 빌보드 핫 100(주간 인기 곡 순위)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빌리 진’과 ‘비트 잇’은 각각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앨범은 1983년까지 3,200만 장이 팔렸다(현재까지는 7,000만 장). 역대 최고 판매량이었다. 그래미상 역대 최다인 8개 부문 수상 기록도 세웠다.
다큐멘터리는 ‘스릴러’ 발매 전후 잭슨의 활약을 집중적으로 돌아본다. 잭슨이 앨범을 낼 무렵 주변 여건은 그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보는 음악 시대’를 연 케이블 음악채널 MTV가 막 개국해 각광을 받는 시기였으나 흑인 잭슨과 ‘스릴러’를 외면했다. 록 전문 채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잭슨은 ‘스릴러’의 성공에도 집안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형제들과 함께 순회공연을 다녀야 했다.
잭슨의 팬이 아니어도 눈이 동그래지고, 귀가 쫑긋해질 대목이 적지 않다. ‘빌리 진’과 ‘비트 잇’의 데모 녹음을 들을 수 있다. ‘스릴러’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존 랜디스 감독, 기타 연주자로 앨범 작업에 참여한 스티븐 루커서, 절친한 사이였던 배우 브룩 쉴즈 등이 팝 음악 역사의 기념비가 세워지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준다. 유명 가수 어셔와 윌 아이 엠 등 후배 음악인들은 잭슨이 남긴 유산을 돌아본다.
잭슨은 마냥 행복하진 않았다. 지독한 약물중독에 시달렸고, 아동성추행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스릴러’ 발매 즈음은 그의 인생에서 정점이었다. 1987년 앨범 ‘배드’ 역시 세상의 갈채를 받았으나 ‘스릴러’에 비교하기는 어렵다. ‘문 워크’로 압축되는 잭슨의 춤 동작이 K팝 대표 그룹 방탄소년단 등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내용만으로도 팝 음악 역사에서 ‘스릴러’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