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악인…흑백 화면에 담아낸 소시오패스 대명사

입력
2024.04.13 11:00
15면
넷플릭스 드라마 '리플리 더 시리즈'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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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는 익숙한 이름이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와 ‘리플리’(1999)를 보지 않은 이라도 알만하다.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자신이 만든 허구의 세계에 빠져드는 증상을 표현하는 ‘리플리 증후군’이 종종 언급되기도 한다. 드라마 ‘리플리 더 시리즈’는 익숙한 이름에 익숙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나 낯선 재미를 준다.

①이탈리아로 간 사기꾼

미국 뉴욕에 사는 30대 남자 리플리(앤드루 스콧)는 사기꾼이다. 신분증 위조와 수표 사기 등 돈 되는 일은 뭐든 한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생각지도 않은 제안이 들어온다. 선박건조업자 허버트(케네스 로너건)는 이탈리아에 체류 중인 아들 디키(조니 플린)를 데려와 달라 한다. 디키는 가업을 이으려는 마음은커녕 부모 돈으로 한량처럼 살아간다. 경비는 얼마든지 주겠다는 조건에 리플리는 곧바로 유럽으로 향한다.

리플리는 두뇌 회전이 빠르고 천연덕스러우며 악랄한 인물이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속마음을 쉽게 감춘다. 이상하게도 리플리는 디키에게 자신이 이탈리아에 온 이유를 쉽게 밝힌다. 디키는 술친구가 필요했던지 리플리와 쉬 어울린다. 디키의 여자친구 마지(다코타 패닝)는 리플리를 경계한다.

②흑백 화면에 담은 긴장

흑백 화면으로 일관한다. 처음에는 낯서나 흑과 백의 명징한 대조가 인상적이다. 1960년대라는 오래된 시간을 상기시키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스타일로 따지면 1940~1950년대 필름 누아르에 뿌리를 두고 있다.

흑백임에도 화려하다. 세밀히 배치된 구도, 인물의 미묘한 표정 변화가 풍성한 볼거리로 이어진다. 매 장면이 명장면이라 해도 될 정도로 영상미가 남다르다. 소도시 아트라니와 나폴리 등 이탈리아 풍광 역시 눈요깃거리다.

리플리는 디키의 삶을 훔쳐 간다. 디키의 돈도 계좌도 옷도 구두도 다 리플리 차지다. 리플리가 유난히 눈독 들이고 먼저 챙기는 디키의 물건은 명품 타자기와 고급 만년필, 비싼 카메라다. 기록에 쓰이는 것들이다. 리플리는 이들 물건으로 자신의 삶을 새로 써내려 간다.

③자신을 예술가로 여긴 악인

‘태양은 가득히’의 리플리(알랭 들롱)와 ‘리플리’의 리플리(맷 데이먼)는 여린 얼굴의 소유자들이다. 우수에 가득 찬 표정이거나 앳된 모습이다. 둘은 악인이 분명하나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보인다. 드라마 속 리플리는 결이 좀 다르다. 강렬한 인상을 지닌 그는 뼛속 깊이 악인이다. 그는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면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범죄를 저지른다. ‘리플리 증후군’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사기꾼답게 거짓말에 능숙하지만.

드라마 속 리플리는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1571~1610)의 삶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치다 최후를 맞이한 카라바조처럼 스스로가 예술적 재능이 남다른 비극적 인물이라 착각한다.

뷰+포인트
앞서 만들어진 영화 2편처럼 미국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1921~195)의 소설 ‘리플리’(1955)를 밑그림 삼았다. 리플리의 범죄행각이 들통날지 여부가 만들어내는 긴장이 끝날 때까지 지속된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도 스타일과 구성을 달리하면 여전히 재미를 제조해낼 수 있음을 웅변하는 드라마다. 앤드루 스콧의 연기가 일품이다. 그는 영국 인기 드라마 ‘셜록’(2010~2017)에서 명탐정 셜록 홈스의 호적수 모리아티 역할로 낯익은 배우다. 각본가로 더 유명한 71세 노장 스티븐 자일리안이 메가폰을 잡았다. 그는 ‘쉰들러 리스트’(1993)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87%, 시청자 79% ***한국일보 권장 지수: ★★★★(★ 5개 만점, ☆ 반 개)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