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선거엔 '심판론'이라는 프레임이 작동한다. 선거를 민심의 회초리에 비유하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이번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의 '정권 심판론'과 국민의힘의 '거야 심판론'이 충돌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20%포인트 이상 앞서온 여론조사 결과를 감안하면, 정권 심판론은 변수가 아닌 상수였다.
□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을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로 정의했다. 프레임에 대한 인식은 언어를 통해 이뤄지는데, 누군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코끼리를 생각하게 되는 식이다. 프레임을 부정하거나 반박하기 위해 입에 올릴수록 해당 프레임은 더욱 활성화한다. 선거에서 유권자는 프레임을 각 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판단의 준거로 삼는다.
□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윤 대통령을 최대한 언급하지 않은 것이나, 명품백 수수 논란이 불거진 김건희 여사가 넉 달간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춘 것은 같은 이유다. 유권자에게 윤 대통령 부부를 떠올리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로 인해 이번 총선에선 대통령과 영부인이 동반 투표하는 모습을 공개해 투표를 독려하는 관례까지 깨졌다. 본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김 여사의 투표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자, 대통령실은 김 여사가 지난 5일 혼자서 사전투표를 비공개로 마쳤다는 사실을 나흘 후에야 슬그머니 알렸다. 김 여사의 투표 사진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 이 같은 노력을 허사로 만든 게 여권이란 사실은 역설이다. 한 위원장의 '운동권 특권세력 청산론'과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은 대표적 실책이다. 특권이라면 86 운동권 세력보다 현 집권 세력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 대통령의 대선 경쟁자였고, 검찰총장이던 윤 대통령을 단숨에 대권주자로 만들어준 계기는 2019년 '조국 사태'였다. 선거 막판 대통령실이 홍보한 '875원짜리 대파'는 민생의 팍팍함을 상징했다. 여당이 윤 대통령을 떠올리는 프레임으로 선거를 치렀으니, 선거 전략상으로도 참패는 예견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