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회장 "비대위원장 맡겠다" vs 비대위 "안 돼"...한목소리커녕 갈라지는 의협

입력
2024.04.09 19:00
임현택 회장 당선인 요구, 비대위는 거부
총선 뒤 합동 기자회견 취소, 차후 일정 미정
의협의 통일된 안은 오로지 '원점 재검토'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2,000명 확대에 반발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의 내홍이 깊어지고 있다. 의협 차기 회장 당선인이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겠다고 요구했지만 비대위원장은 단칼에 거부했다. 총선 직후에 열겠다고 예고했던 의료계 합동 기자회견은 내부 의견 조율이 안 돼 취소했고 차후 개최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은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날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의 비대위원장직 이양 요청에 대해 "비대위를 흔들려는 시도"라고 저격했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 구성과 해산은 전적으로 대의원회 권한인데, 이런 규정을 벗어난 주장은 지금 정부가 밀어붙이는 정책과 다를 바 없다"면서 "주어진 시간까지 전 회원의 뜻을 받들어 비대위원장의 소명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월 7일 임시 대의원 총회에서 의결된 비대위 활동기간은 이달 30일까지다. 임 당선인의 회장 임기는 다음 날인 5월 1일부터 시작된다.

임 당선인은 의협이 단일한 목소리를 내려면 자신이 취임 전부터 비대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며 전날 회장직 인수위원회 명의로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이양 요청 공문을 보냈다. 지난달 말 회장 당선 직후에도 공동으로 비대위원장을 수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강경파인 임 당선인은 일관되게 "의대 정원을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달 4일 윤석열 대통령과 만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을 '내부의 적'이라 표현하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회장 당선인과 비대위 간 감정의 골이 벌어지는 가운데, 김성근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대전협 등과 조율이 덜 돼 이번 주로 예정됐던 합동 기자회견은 시기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회견 계획을 발표한 지 이틀 만에 번복한 것으로, 전날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이 페이스북에 "기자회견에 합의한 적 없다"고 밝히면서 예견됐던 결과다.

의협 비대위는 단체별 의견을 수렴해 추후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시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내부 의견 조율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사회적 협의체나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등 정부가 사태 해결을 위해 제안한 대화 기구에 의사들이 통일된 대안을 갖고 참여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설사 합동 기자회견을 해도 의협은 '원점 재검토'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의정 갈등이 해소될 실마리가 도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부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통일된 안을 제시하면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논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의협 비대위는 합동 기자회견에서 '숫자'를 언급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날 김성근 위원장은 "의료계의 통일된 안이 원점 재검토"라고 강조하며 "그 기간이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히 논의하고 합의를 도출해야 현재와 같은 혼란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