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야당마저 "산업은행 부산 이전"…뒤숭숭한 '신의 직장'

입력
2024.04.09 17:00
민주당 부산 후보들 "이전" 공약에 당혹감
최근 2년 184명 퇴사...입사 5년 이하 40%



총선을 앞두고 산업은행이 뒤숭숭한 분위기다. 윤석열 정부가 산은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하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그동안 노동조합과 임직원들은 야당과 공동으로 맞대응해왔는데, 갑자기 부산 지역 민주당 후보들이 산은의 부산 이전을 외치고 나섰기 때문이다. 산은 내부에선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해 여소야대 구도가 이어진다 하더라도 부산 이전이 추진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9일 산업은행과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부산 남구 여야 후보들은 제1공약으로 산은 남구 이전을 꼽고 있다. 당초 지난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은 공약으로 산은의 부산 이전 계획을 꺼내든 바 있다. 하지만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규정한 산업은행법을 국회에서 개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 그동안 정상 추진이 어려웠다. 야당에서는 정책금융기관의 지방 이전에 대해선 추가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며 반대해 왔다.

총선 시즌이 되자 부산 지역에선 다시 산은 이전 안건이 재부각됐다. 여당은 산은 이전을 당 차원에서 강력 추진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월 부산을 찾아 "4월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보란 듯이 제일 먼저 산업은행법을 통과시키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여야가 초접전을 이어가자 부산 지역 야당 후보들까지 산은 이전 공약에 동참했다.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부산 남구 후보는 최근 유세에서 "저희들에게 과반수만 해주신다면 산업은행을 반드시 부산으로 이전해 부산의 하드웨어가 더 잘 돌아가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노조 측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노조 관계자는 "아무래도 선거 이슈가 맞물려 있다 보니 민주당 부산시당에서 그런 공약을 냈는데, 아직까지 당내 입장 정리가 안 된 걸로 알고 있다"고 에둘러 말했다. 다만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공공기관 이전과 지역균형발전을 당론으로 채택해 추진해 온 만큼 민주당은 선거 이후 산은 이전을 논의할 가능성이 없잖다.

산은 노조는 본점 부산 이전 시 임직원 상당수가 이탈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부산 이전 논의가 시작된 2022년과 2023년 각각 97명과 87명 등 총 184명이 퇴사했다. 특히 5급인 1~5년 차 젊은 직원들이 퇴사자의 40%에 달했다. 취업 준비생에게 '신의 직장'으로 꼽혔던 산은 경쟁률 역시 2020년 67.2:1에서 2024년 30.45:1로 반토막 났다. 산은 관계자는 "능력 있는 허리급 연차까지 대거 나가면서 이를 신입으로 채우고 있다"며 "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하는 산업은행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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