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러시아가 구소련제 재래식 무기로 우크라이나 전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낙하 시 너비 20m의 구멍을 낸다는 '활공폭탄(glide bomb)' 얘기다. 그 파괴력 탓에 우크라이나 현지에선 "대응 불가 무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활공폭탄의 위력을 확인한 러시아가 공중전에 사활을 걸면서 가뜩이나 바닥난 무기고로 신음하던 우크라이나로선 대공 방어 시스템 추가 확보가 절실해진 상태다.
러시아 공군기가 뿌려대는 유도탄인 '활공폭탄'이 우크라이나 전선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는 구소련제 재래식 폭탄에 비행날개와 자체 위성항법시스템 '글로나스'를 달아 활공폭탄으로 개조했다. 주로 러시아 공군 주력 전폭기 Su-34와 Su-35에 실려 투하되는데, 최대 1,500㎏에 달하는 폭발물을 싣고도 비행거리가 60㎞를 넘는다. 지상에 떨어졌을 때 너비 20m, 깊이 6m에 달하는 구멍을 남길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고 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전선 등 격전지에 활공폭탄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아우디이우카를 장악한 것도 당시 활공폭탄 수백 발을 발사해 마을을 초토화시킨 결과였다. 미사일과 일반 포탄에 비해 생산(개조) 비용이 저렴해 러시아 입장에선 '가성비' 높은 효자 무기가 됐다. 최근 러시아 국방부는 무게 1,500㎏의 활공폭탄(FAB-1500)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는가 하면, 3,000㎏짜리 FAB-3000의 대량 생산 계획까지 밝혔을 정도다.
우크라이나는 속수무책이다. 사정거리와 파괴력을 감안할 때 사실상 대응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도네츠크 지역의 한 병사는 "(활공폭탄은) 매우 무섭고 치명적인 무기"라며 "폭탄이 떨어진 지점에서 1㎞ 떨어진 곳 건물 문짝이 떨어져 나갈 정도의 위력"이라고 FT에 전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 진지를 파괴하는 활공폭탄의 공격이 일상화됐다"며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대규모 공격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이미 치명적 유용성을 입증한 활공폭탄은 우크라이나 도시를 점령해버렸다"고 전했다.
철통같은 대공 방어만이 살 길이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러시아의 폭탄 투하에 맞설 유일한 방법은 폭탄을 탑재한 전투기를 격추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학수고대 중인 미국의 만능 전투기 F-16은 올해 여름 이후에나 우크라이나 땅을 밟는다. 601억 달러(81조 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을 붙잡고 있는 미국 의회에 근본적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국제문제전략연구소(IISS)는 "러시아의 활공폭탄 공격 증가는 우크라이나의 방공 무기 부족 현실을 보여준다"며 이는 "최근 미국의 군사 원조 보류와 무관하지 않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