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려앉은 산사의 밤은 적막감이 감돈다. 단, 지금 이 시기 전남 구례군 화엄사는 예외다. 300년 된 홍매화를 보려는 발길이 전국에서 밤낮없이 이어진다. 이런 북적거림이 싫어서였을까. 매년 마음에만 두고 있던 화엄사 홍매화를 찾았다.
사찰 정문인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들어서면 사천왕상이 맞아준다. 험상궂는 인상에 콩닥콩닥 뛰는 가슴으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눈앞이 환하게 빛난다. 한밤중에도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는 홍매화를 마주하는 순간이다. 300여 년 역사를 안은 고목의 자태와 그 속에 피어난 붉은 꽃잎은 숭고함과 함께 신비로움을 더한다. 굵은 몸통과 이끼 낀 나무껍질은 오랜 세월 모진 풍파를 견뎌온 우리 민족의 애환을, 핏빛의 매화꽃은 어려움 속에서도 피어난 민초들의 강인함과 인내를 보여주는 듯하다.
화엄사 홍매화는 올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지난해보다 두 배가 넘는 25만여 명이 개화 시기에 맞춰 찾았다고 한다. 전국에서 모여든 사진작가들이 좀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치열한 자리다툼을 벌이는 모습에 한 스님이 혀를 차며 일갈한다. “욕심을 버리기 위해 절을 찾아야 할 텐데 어찌 여기까지 와서 저렇게 욕심을 부리는가.” 부끄러움을 속으로 삼키며 혼잣말로 답했다. "스님, 한 수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