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4일 집권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의원들에 대한 징계를 확정했다. 자민당 최대 계파이자 비자금 조성 규모가 가장 큰 아베파·니카이파 핵심 인사들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10일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지난해 말부터 여당 발목을 잡아 온 비자금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 자신은 징계 대상에서 제외해 당내 반발 조짐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계파 갈등'으로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공영방송 NHK와 아사히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자민당은 이날 당기위원회(규율위원회)를 열어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의원 82명 중 39명에 대한 징계 처분을 확정했다.
앞서 검찰 수사 결과 아베파와 니카이파 등 자민당 일부 계파가 정치자금 모금 행사(파티)를 개최하면서 할당량 이상의 '파티권'을 판 소속 의원들에게 초과분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징계 대상은 2018~2022년 파티 초과분을 돌려받은 뒤 정치자금 수지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은 금액이 500만 엔(약 4,400만 원) 이상인 의원들이다.
자민당 최대 계파인 아베파 핵심 간부들은 중징계를 피하지 못했다. 아베파 좌장이었던 시오노야 류 전 문부과학장관과 세코 히로시게 전 참의원 간사장에게는 '탈당 권고'가 내려졌다. 탈당 권고는 '제명'에 이어 두 번째로 강한 징계다. 탈당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제명된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전 경제산업장관과 시모무라 하쿠분 전 문부과학장관, 아베파 해산 직전까지 사무총장을 지낸 다카기 쓰요시 전 국회대책위원장은 '당원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 당원 자격 정지 이상의 처분을 받으면 징계 기간 공천을 받을 수 없다.
아베파의 사무총장을 지낸 마쓰노 히로카즈 전 관방장관, 니카이파 사무총장을 맡은 다케다 료타 전 총무장관은 1년간 '당직 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 밖의 의원들은 기재하지 않은 금액 규모에 따라 직책 정지나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즉각 반발이 터져 나왔다. 기시다파도 소규모이지만 스캔들에 연루됐는데, 수장인 기시다 총리가 '경고'조차 받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이 크다. 총리뿐 아니라 기시다파 의원들이 징계 대상에서 빠지면서 '솜방망이 처벌', '꼬리 자르기' 논란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징계를 받은 39명 중 36명이 아베파 소속이며, 3명은 니카이파 의원들이다. 마이니치신문은 "(징계가 쏠린) 아베파와 니카이파를 중심으로 당내에서 징계에 대한 불만이 분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당장 탈당 권고를 받은 시오노야 전 장관은 당에 제출한 의견서에 "(기시다 총리도) 도의적, 정치적인 책임을 져야만 한다"며 "총재(기시다 총리)를 포함해 당 소수 간부에 의해 불공평하고 불투명하게 결정됐다"고 문제 삼았다.
징계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점도 자민당에 대한 불신을 더 키울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아베 전 총리의 측근이자 미기재 금액이 세 번째로 큰 하기우다 고이치 전 정조회장은 '1년 당 직무 정지'로 중징계는 피했다. 아사히신문은 당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하기우다 전 정조회장은 아소 총리와 거리를 두는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와 관계가 양호하다"며 "기시다 총리가 9월 총재 선거를 앞두고 하기우다를 끌어안기 위한 결정이라는 의견도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