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급 강진 속 신생아 곁 지킨 간호사들… 수백명 고립에도 구출 난항

입력
2024.04.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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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강진 이틀째, 9명 사망하고 1600여 명 고립
2~3일간 여진 예상...비 예고되며 구조 난항 예상
신생아 붙잡고 떠나지 않은 간호사들 화제
원폭급 규모 비해 인명 피해 최소화했다 평가도

대만 동부 도시 화롄 인근에서 발생한 강진에 따른 사상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무너진 건물과 산속에 갇혀 구조를 기다리는 인원도 600여 명에 이른 것으로 파악됐다. 산악지대의 한 공원에서도 1,000명 정도가 발이 묶였다. 향후 수일간 이어질 여진과 고립 인원의 신속한 구출 여부가 대규모 재난으로 확대될지 여부를 가를 변수가 됐다.

4일 대만 중앙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전날 오전 7시 58분쯤(현지시간) 화롄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7.2(미국·유럽 지진당국 발표는 7.4)의 강진은 1999년 '921 대지진' 이후 25년 만의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사망자 9명...붕괴 건물 고립 인원 구출 난항

대만 중앙재해대응센터는 이번 지진으로 인해 이날 오후 4시 기준 사망자 10명, 부상자 1,067명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사망자는 화롄현의 타이루거국가공원(4명), 쑤화 고속도로(1명), 다칭수이 터널(2명) 등 모두 화롄 지역에서 발생했다. 고립된 인원은 660명으로 파악됐고, 38명은 실종 상태다. 고립된 사람들은 대부분 허핑 광산의 광부와 붕괴된 건물 주민들이다. 이와 별도로 산악 지역에 위치한 타이루거국가공원 측은 지진 전 공원에 들어온 인원 약 1,000명이 공원 안에서 발이 묶인 것으로 추정했다. 사실상 1,600여 명이 제한된 공간에 갇혀 있는 셈이다.

대만 소방당국은 붕괴된 건물 속에 고립된 주민을 구출하는 데 구조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이번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은 100여 채에 달한다. 첫 지진 발생 이후 이날까지 300여 차례의 여진이 발생했고, 향후 2, 3일 내 규모 6.5~7.0의 여진이 예상돼 인명 피해는 늘어날 수 있다. 이 기간 화롄 지역엔 비가 예보돼, 구조 작업에 난항이 예상된다.

신생아 침대 붙잡은 간호사들...공포 속 감동

지진 공포 속에서 대만인들에게 감동을 안겨준 소식도 전해졌다. 현지 매체 기자폭료망이 보도한 타이베이의 한 산부인과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지진 발생 당시 신생아실의 모습이 담겼다. 진동이 시작되자 신생아들이 누워 있는 침대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에 간호사 3명이 달려와 양팔을 뻗어 있는 힘껏 침대를 붙잡으며 아기들을 보호했다. 진동이 계속됐지만 간호사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대만 네티즌들은 "모두가 자신을 보호할 때 당신들은 아기들을 보호했다"며 찬사를 보냈다.

뒤늦게 발견된 사망자 중에는 화롄의 30대 여교사도 포함됐다. 당초 무너진 9층 건물에서 소방관에 의해 구조됐지만,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를 구하려 다시 건물에 들어갔다가 여진에 따른 추가 붕괴로 숨졌다.

"원폭 32개 강도 비해 인명 피해 적었다" 평가도

외신에선 지진 강도에 비해 사망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당초 이번 지진은 원자 폭탄 32개가 한꺼번에 터진 것과 맞먹는 수준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그러나 2,400여 명이 사망했던 1999년 '921 대지진'(규모 7.6)과 달리 이번 지진에 따른 사망자 수는 아직 9명으로 집계됐다. AP통신은 전문가들을 인용, "1999년 대지진 이후 대만 정부는 건물 내진 설계 비용을 지원하는 등 지진 대비 능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대만의 이 같은 노력의 결과가 이번 지진에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다만 구조 작업이 지연될 경우 인명 피해가 늘어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한국 정부는 대만에 대한 지원 의사를 표명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대만의 이번 지진으로 인한 인명 피해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우리는 재난 구조와 피해 구조를 위해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입장인 중국도 지진 발생 당일 국무원 대만판공실 성명을 통해 "재난 지원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만 정부는 "그들(중국)의 우려에 감사하지만 본토(중국)가 우리를 도울 필요는 없다"며 거절했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