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공격에 구호활동가 무덤 된 가자지구… 지원 끊으려 의도적 방해?

입력
2024.04.03 17:30
WCK 직원들 이스라엘군 공격에 사망
"차량에 로고... 이스라엘 허가도 받았다"
안전상 우려 구호단체들 속속 활동 중단

가자지구가 인도주의 활동가들의 '무덤'이 됐다. 1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국제구호단체인 월드센트럴키친(WCK) 소속 활동가 7명이 한꺼번에 사망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지난해 10월 전쟁을 시작한 이래 수많은 구호요원들이 가자지구에서 목숨을 잃었다. 많은 구호단체들이 안전상 이유로 가자지구 활동을 중단했거나 중단을 검토하고 있어, 가자지구 주민에게 닥친 기아 위기가 악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구호단체 로고 달린 차량 공격한 이스라엘

WCK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후 가자지구에서 약 4,200만 끼의 식사를 제공해온 미국 기반 구호단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파악한 WCK 소속 활동가 사망 경위는 이렇다. 이들은 1일 키프로스·가자지구 해상 경로로 전달된 구호품 100톤을 차량 3대에 나눠 싣고 가자지구 중부 데이르 알발라 창고에 하역했다. 사건은 이들이 알 라시드 도로를 따라 이집트 국경 근처에 있는 가자지구 남부의 WCK 집결지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차량에는 WCK를 상징하는 프라이팬이 그려져 있었고 이스라엘 당국으로부터 해당 도로를 이용해 이동해도 된다는 허가도 얻은 상태였지만, 이스라엘군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차량을 표적 공격했다. 차량 3대는 완전히 망가졌고, 일부 시신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

이 사건은 가자지구에서의 구호활동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를 부각했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후 가자지구에서 사망한 구호요원은 약 180명이다. 단일 전쟁에서 발생한 구호요원 사망 규모 중 가장 크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활동가 알렉스 포트는 "인도주의적 구호활동가와 의료종사자들이 직접적인 표적이 되고 있다"고 중동권 매체 알자지라방송에 말했다.

구호요원 사망은 전쟁 내내 이어졌지만 이스라엘이 이를 제대로 조사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사망한 WCK 활동가들의 출신 국가인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은 이스라엘에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안전한 구호활동 불가능"... 기아 위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민간인을 무차별하게 살해하는 방식의 전쟁을 이어간다면 이러한 비극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번 사건으로 구호단체들이 안전을 우려하며 가자지구에서의 활동을 속속 중단하고 있어 가자지구의 기아 위기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엔은 가자지구 인구 230만 명 중 111만 명이 '재앙·기아'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최근 전망했다.

WCK는 사건 직후 "구호활동가 살해를 멈추라"며 가자지구 활동을 잠정 중단했고, UNRWA 다음으로 큰 규모의 인도주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아네라도 활동 중단을 선언하며 "구호품을 안전하게 전달하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키프로스 외무부에 따르면 가자지구 전달을 위해 키프로스 라르나카 항구에 대기하고 있던 일부 물량은 반환될 예정이다.

이스라엘이 기아 위기를 악화시켜 전쟁을 유리한 방식으로 끌어가고자 구호 활동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거듭 제기됐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일 "(WCK 소속 활동가 사망은) 의도치 않게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라며 책임을 축소하고자 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