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T야?"
다정다감하게 어루만져주는 공감능력이 부족한, 꼭 말로 안 해도 될 것을 말로 입 밖에 내서 '팩트폭력'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쓰는 말이다. 불교 쪽에서는 이제 이 말을 "너 '가전연'이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부처의 10대 제자 중 한 명이었던 가전연은 분석력과 통찰력이 뛰어나 '논의제일(論意第一)'로 꼽혔던 인물이다.
최근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이 이윤정 마인드코칭연구소 소장과 함께 개발, 보급에 나선 에니어그램(Enneagram) '부처님 마음, 내 마음' 이야기다. MBTI가 인간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나눈 마이어스-브릭스 유형지표라면, 에니어그램은 머리(5~7번 유형)·가슴(2~4번 유형)·배(8·9·1번 유형)를 기반으로 성격 유형을 9가지로 나눈 지표다.
1~9번에 이르는 9가지 성격 유형에다 부처의 10대 제자 중 9명인 우바리, 아난, 부루나, 목건련, 가전연, 가섭, 라훌라, 수보리, 사리불이라는 캐릭터를 부여했다. 온라인(부처님 마음, 내 마음)에서 45개 항목의 질문에 대답하면 자기 성격 유형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젊은 층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종교계에선 파격 행보로 은근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개발을 진행한 포교연구실장 문종 스님과 이 소장을 만났다.
-어떻게 개발하게 됐나.
이윤정= "평소 에니어그램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젊은 신도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방법을 찾던 포교원의 의뢰가 있었다."
문종 스님= "불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신도 연령대가 높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위해 절에 나와 이런저런 기도를 하시는데, 정작 아이들은 절에 잘 오질 않는다. 그런 분들이 좀 더 쉽게 절에 다가올 수 있도록 하고, 일단 다가온 분들도 불교 안에서 흥미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해서 개발을 의뢰했다."
-성격 유형 분석 중 에니어그램을 택한 이유는.
이윤정 = "1970~1980년대엔 디스크(DISC)라는 4가지 유형 분석이 널리 퍼졌고, 그 뒤에 16가지 유형의 MBTI가 인기를 얻었다. MBTI 또한 좋은 도구인 건 맞다. 하지만 '넌 T니까 이런 사람, F니까 이런 사람' 하는 식으로 너무 평면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그에 반해 에니어그램은 행동 방식보다는 동기를 좀 더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난 어떤 사람인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에게 접근하는 방법'이나 '잘 어울리는 수행법' 같은, 관계 맺기나 성장에 대한 조언으로 연결 지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종 스님 = "공개 전에 우리 내부적으로 검사, 평가해 봤는데 싱크로율이 95%에 이른다는 평가가 나왔다. MBTI와 달리 행동 형태뿐 아니라 행동 동기가 드러나다 보니 나를 너무 파헤치는 것 아닌가 해서 검사 결과를 감추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 성격 검사를 하면서 부처님 제자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아볼 수 있고, 적합한 수행방법까지 일러주기도 하니까 여러모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MBTI에서 T가 논리적인 사람이라는 데서 끝난다면, 에니어그램에선 가전연을 두고 머리 수준에서 판단한다는 걸 일종의 '절전 상태'로 본다. 가슴이나 배가 아닌 머리에 에너지가 모이는 건 말하자면 에너지 부족 상태로, 바로 들이대기보다는 좀 더 부드럽게 접근해야 좋은 관계 맺기가 가능하다고 조언해 준다.
-향후 계획은.
문종 스님= "일단 널리 알리는 게 목표다. 올해 부처님오신날, 연등회, 문화마당 등 여러 행사에서 젊은 신도들에게 널리 알릴 계획이다. 검사도 한번 받아 보고, 부처님 제자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화젯거리가 돼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챌린지도 유행하면 좋겠다."
이윤정="45개 항목 질문지가 아이들에게 다소 어렵다 해서 아이들용 설문을 개발할 예정이다. 설문이 몇 번 반복되면 지겨울 수 있으니 좀 더 연구해서 업그레이드할 생각이다."
포교원과 마인드코칭연구소는 이 에니어그램을 기반으로 일종의 타로카드 같은 것도 만들어 선보일 예정이다. 성격 유형과 심리 분석을 통해 신도들 상담에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