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인(75) SPC그룹 회장이 잇달아 검찰 소환에 불응한 끝에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에 따라 검찰청으로 잡혀갔다. 파리바게뜨 가맹점 제빵기사 노동조합 탈퇴 종용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허 회장이 업무와 건강 상태를 이유로 계속 검찰 조사를 미룬 것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 임삼빈)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허 회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2일 집행했다. 검찰은 서울 강남의 종합병원에 입원 중인 허 회장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압송했다. 그는 전날 검찰의 소환 요구에 "건강상 이유로 입원 중이라 출석이 어렵다"며 조사를 미뤘다.
허 회장은 2019년 7월~2022년 8월 SPC그룹 자회사인 PB파트너즈가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들을 상대로 노조 탈퇴를 종용하거나 인사 불이익을 주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하는 과정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PB파트너즈 대표인 황재복 SPC 대표가 사측에 친화적인 한국노총의 조합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노조위원장에게 사측 입장에 부합하는 인터뷰나 성명서 발표를 하도록 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허 회장이 이런 범행의 배경에 있다는 것이 검찰의 의심이다.
검찰이 사전구속영장 청구가 아닌 체포영장 방식으로 대기업 총수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에 검찰이 체포영장까지 받아온 이유는 허 회장이 조사에 매우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소환 통보를 받은 지난달 18, 19, 21일에는 업무를 이유로 응하지 않았고, 지난달 25일에서야 응했지만 조사 한 시간 만에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사실상 막무가내로 검찰청사를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네 차례나 소환통보했지만 제대로 된 조사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검찰은 전날 그를 다시 불렀지만, 허 회장 측은 "출석 의사를 밝혔지만, 병원 측에서 출석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소견서를 내 출석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검찰에 전달한 뒤 재차 불출석했다. 허 회장이 체포영장 발부 명분을 줬다는 평가가 나오는 건 그래서다.
형사소송법상 정당한 이유 없이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최대 48시간까지 조사할 수 있다. 징역 3년형 이상의 범죄행위에 한해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를 따지는 긴급체포와 달리, 영장에 의한 체포는 피의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조사에 비협조하는지를 주로 살핀다. 법원 입장에서 허 회장 측이 제출한 의료진 소견서 등도 검토해 영장을 발부한 만큼, 대면조사를 받을 수 있는 건강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허 회장 측이 검찰이 확보한 진술·증거 등을 확인해 대응전략을 세우기 위해 무리하게 시간을 끌었다고 평가한다. 앞서 검찰은 허 회장의 과거 배임 혐의 수사 관련 정보 등을 제공받고 향응 등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백모 SPC그룹 전무 등의 재판에서, 허 회장 수사를 이유로 수사기록 등 관련 자료의 열람·등사를 변호인에게 허용하지 않아 재판부 질타를 받았다. 검찰은 당시 "핵심 공범 소환이 예정된 다음 주엔 가능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로서는 증거 제출 등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을 테고, 마침 허 회장이 반복적으로 조사에 불응해 체포영장의 명분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총수가 체포된 SPC는 충격에 빠졌다. 대표이사 한 명(황재복)이 구속되고 나머지 한 명(강선희)이 사임한 와중에, 허 회장까지 붙잡혀 가면서 리더십 공백 상황이 왔기 때문이다. 특히 판사 출신인 강 전 대표가 법무·대관·홍보 등 대외 업무를 총괄해왔던 만큼 그의 갑작스러운 사임 이후 SPC그룹이 오너 리스크에 대응하는 역량이 취약해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은 허 회장을 상대로 노조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이르면 3일 구속영장을 청구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