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2,000명 증원'을 강조한 1일 대국민담화를 이렇게 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51분간의 담화를 통해 집단행동에 동조하는 의료계를 향해 ‘직역 카르텔’이라고 규정하며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동시에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담화 메시지는 원칙, 강공으로 읽혔다. 하지만 이후 7시간 만에 대통령실은 “2,000명 숫자가 절대적 수치란 입장은 아니다”라고 태세를 전환했다. 2,000명 증원안을 고수하겠다는 것인지, 대화로 조율할 수 있다는 건지 아리송한 두 입장이 동시에 나온 것이다. 대통령과 참모의 발언이 왜 이처럼 결이 달랐을까.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끝난 이후 대통령실은 담화를 준비하기 전보다 바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한다. 예상했던 반응과 달랐기 때문이다. 애초에 참모들이 윤 대통령과 함께 대담 원고 회의를 할 때 ‘유연한 자세’를 담는 것으로 최종 조율이 됐다.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는 담화 구절을 핵심 주제로 놓고 원고의 살을 붙였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런데 1만4,000자 분량 담화의 8할은 △윤 대통령의 국정 철학 △2,000명 증원안의 타당성 △의료개혁 때마다 반대로 일관하는 의료계를 향한 반감 △개혁 정책 추진의 정당성 △기득권 카르텔과의 타협 불가 등을 토로하는 일종의 ‘격문’ 성격을 띠었다. 한 핵심 참모는 2일 담화문 구성에 대해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개혁이라는 게 이런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걸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싶어 하셨다”라고 말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도 고민이 깊었다. 일부 의료계가 정권 심판을 이야기하는 등 논리가 아닌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것에 대해 ‘유화 메시지도 넣어야 하지만 할 말은 하겠다’는 의지도 강하셨다”고 설명했다.
담화 이후 정치권과 여론의 반응은 대통령실의 기대에 못 미쳤다. 꽉 막힌 의정 갈등의 출구를 열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담화의 요지는 결국 ‘2,000명 증원안에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귀결됐다. 이에 대해 "2,000명에 얽매이면 대화의 빗장이 열릴 수 없다(윤상현 국민의힘 후보)", "대통령과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숫자에 대한 고집을 버려야 한다(신현영 민주당 대변인)"며 여야 모두에서 혹평이 잇따랐다.
이에 대통령실은 특단의 조치로 성태윤 정책실장을 방송에 내보냈다. 대통령실 내에서 의료개혁과 관련한 정책을 지휘하고 있는 성 실장은 오후 7시쯤 KBS에 출연해 윤 대통령 담화의 ‘원래 주제’를 뒤늦게 강조했다. 성 실장은 “2,000명 숫자가 절대적 수치란 입장은 아니다”, “정부는 2,000명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정책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수습에 나섰다. '대통령실 입장이 좀 전향적이란 생각이 든다'는 사회자 반응에 성 실장은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전향적인 입장에서 의대 증원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인터뷰는 원래 예정돼 있던 게 아니다"라며 "(담화 이후) 좀 더 설명이 필요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