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를 해체하고 다른 단체로 대규모 식량 배급을 하도록 유엔에 제안했다. "UNRWA 직원들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공격에 연루됐다"고 주장하며 기관의 자금줄을 끊은 지 2개월여 만이다. 수많은 생명이 아사 위기에 놓였는데,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기근을 협상에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31일(현지시간) 유엔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UNRWA를 해체하고 인력을 대체 기관으로 옮겨 가자기구에 대규모 식량 공급을 하게끔 하는 방안을 유엔에 제안했다"고 전했다. 제안은 30일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제안은 일차적으로 UNRWA 직원 300~400명을 다른 유엔 기관이나 가자지구 식량 지원을 위한 새 조직으로 옮기는 것이다. 다음 단계에선 UNRWA 자산과 더 많은 직원이 이동할 수 있다. 새 기관 운영주체 등 세부사항은 아직 불분명하다.
그러나 가자지구 최대 구호단체 UNRWA가 해체되면 인도적 지원 공백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크다. UNRWA 대외협력 이사 타마라 알리파이는 "내일 가자지구에서 식량 배급을 시작한다면, UNRWA 트럭을 이용해 음식을 UNRWA 창고로 가져온 다음 UNRWA 보호소 안이나 근처에 식량을 나눠주게 될 것"이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식량 배급 능력을 견줄 다른 단체가 없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UNRWA는 고립된 가자지구에서 음식 배급 외에도 교육 및 필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도 전했다.
유엔 공식 입장은 아직이지만, 내부 시선은 곱지 않다. 가디언은 "유엔 일부 관리들은 이번 제안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기근에 '유엔이 협력을 꺼린다'고 주장하려는 시도로 본다"고 설명했다. 유엔이 UNRWA 해체를 거부하면 가자지구 식량 위기 책임을 전가할 속셈이란 것이다. 익명의 한 유엔 관계자도 "요구를 들어주면 유엔이 철저히 이스라엘에 의해 관리되고, 가자지구 반극단주의의 보루 UNRWA 훼손에도 동참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1월에도 "UNRWA 직원 12명이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 공격에 연루됐다"고 주장했다. 파장은 컸다. 유엔 주요국들은 곧장 UNRWA 자금 지원을 끊었고, UNRWA도 지목된 직원들을 즉각 해고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주장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지난달 19일 나온 유엔 내부감찰실(OIOS) 중간 보고서를 본 관계자들은 "주장을 뒷받침할 새 증거가 없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미국 정보위원회도 지난 2월 내부자료에서 이스라엘 주장을 "확인 불가해 신뢰성 낮다"고 판단했다. OIOS 최종 보고서는 4월 20일에 나온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UNRWA의 해체를 주장해 왔지만, 이는 팔레스타인 탄압의 일환이라고 UNRWA도 맞선다. UNRWA는 지난달 4일 유엔 총회에 성명을 보내 "UNRWA는 운영을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종료시키려는 (이스라엘의) 의도적, 조직적인 운동에 직면해 있다"며 "UNRWA에 대한 반대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들의 곤경에 대한 증인 역할을 하는 우리의 역할을 제거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