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산과 들이 파릇파릇합니다. 바야흐로 봄~ 봄~ 봄~ 봄이 왔네요. 밥상에도 봄기운이 물씬합니다. 냉이 된장국, 달래 무침, 두릅 데침 등 향긋하고 쌉싸래한 봄나물 반찬이 입맛을 돋우며 겨우내 찌뿌둥했던 몸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산채를 먹지만 한국인의 나물 사랑은 유난스러워요. 먹을 수 있는 풀은 죄다 나물로 무쳐 먹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온라인에선 “한국인 식탁에서 보지 못한 풀은 높은 확률로 독초일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회자됩니다.
한국일보와 동아일보에서 편집국장을 지냈던 정통 언론인이자 원조 맛 칼럼니스트인 고 홍승면(1927~1983)씨가 1976~1983년 연재한 미식 칼럼을 엮은 책 ‘미식가의 수첩’(원제 백미백상)에는 이런 내용이 등장합니다. “해방 전 만주에는 중국인 외에 한국인, 러시아인, 일본인도 많이 많이 살고 있었다. 길고 추웠던 겨울이 지나 봄이 찾아온다. 이 무렵 교외 들판에서 바구니를 들고 질척한 땅에 고무신을 적시면서도 나물을 캐고 있는 아가씨들은 영락없이 한국 아가씨들이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나물이 건강식이자 별미이지만 그 옛날에는 춘궁기 보릿고개를 버티게 해준 고마운 식재료였습니다. “99가지 나물 노래를 부를 줄 알면 3년 가뭄도 이겨낸다”는 속담도 있죠. 그만큼 영양도 풍부합니다. 제철 나물은 ‘보약 중에 보약’으로 여겨집니다. 산림청 자료를 통해 얼마나 몸에 좋은지 효능을 알아보니 보약을 넘어 가히 ‘명약’인 듯합니다.
많은 미식가들이 ‘산나물의 왕’으로 두릅을 꼽습니다. 명성에 걸맞게 생김새도 꼭 왕관을 닮았죠. 두릅은 홍삼에 많이 들어 있는 사포닌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혈액 순환과 콜레스테롤 배출, 항노화, 항암에 도움을 줍니다. 고유의 향은 ‘정유’라는 성분 때문인데 마음을 안정시켜준다고 해요. 면역력을 향상시켜주는 비타민C, 빈혈과 충치 예방에 좋은 철분도 다량 들어 있습니다.
취나물은 간 기능 회복에 좋습니다. 취나물에 함유된 칼륨이 독성 물질을 분해하고 간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시켜 줍니다. 비타민A는 야맹증 및 안구건조증 예방, 피부 주름 예방에 효과가 있고요. 봄철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릴 때 기침과 가래를 멎게 하는 효능도 탁월합니다. 옛날에는 타박상이나 뱀에 물린 상처에 치료약으로도 쓰였다고 합니다.
눈개승마는 식감이 소고기 같아서 ‘소고기 나물’로 유명합니다. 실제로 고기처럼 단백질도 풍부하다니 매우 신기합니다. 또 해독과 편도선염 치료, 지혈 등에 효과가 있고, 기운을 북돋아줘 초기 감기 증상에도 좋습니다. 항산화 비타민인 베타카로틴도 풍부해 노화 방지, 피부 미용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제철 나물이 보약이라고 해서 아무 풀이나 뜯어 먹으면 큰일납니다. 꽃이 피기 전 잎과 뿌리만으로는 산나물과 독초를 구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국립수목원 등에 따르면 2020~2023년 독초를 산나물로 오인 섭취해 복통 증상 등으로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에 접수된 사례는 26건으로 봄철인 3~6월에 85%가 집중됐습니다.
산나물과 혼동하기 쉬운 대표적 독초로 동의나물, 털머위, 박새 등이 있습니다. 독초 주제에 뻔뻔하게 나물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동의나물은 곰취와 비슷하게 생겼는데요. 곰취는 향이 좋으면서 잎이 부드럽고 광택이 없으며 날카로운 톱니를 가지고 있는 반면, 동의나물은 향이 없고 잎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실제로 동의나물을 잘못 섭취한 뒤 복통, 구강 마비, 사지 저림, 시야 장애, 의식 저하 같은 중독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머위(식용)와 털머위(독초)는 둘 다 잎이 콩팥 모양인 데다 이름도 큰 차이가 없어 더 헷갈립니다. 이름만 들으면 털머위가 보송보송한 털을 갖고 있을 것 같지만 정반대입니다. 먹는 머위가 잎에 잔털이 있고, 못 먹는 털머위는 잎이 매끄러워요. 대신 털은 잎 뒷면에 나 있죠. 또 머위는 잎이 부드럽고 잎자루가 연두색이지만, 털머위는 잎이 두껍고 잎자루가 붉은색입니다. 머위는 곰취와도 생김새가 유사해요. 즉, 독초 동의나물도 조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독초인 박새는 명이나물로 불리는 산마늘과 닮았습니다. 산마늘은 부추 향이 짙게 나고 줄기 하나에 잎이 2~3장 달려 있지만, 박새는 잎 여러 장이 촘촘히 어긋나 있어 구별할 수 있습니다. 또다른 독초인 은방울꽃도 생김새가 산마늘과 비슷한데요. 은방울꽃은 잎끝이 뾰족하고, 산마늘은 둥글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산나물(식용)과 삿갓나물(독초)은 잎이 줄기에 돌려 나는 점이 같지만, 우산나물은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갈라지는 반면, 삿갓나물은 톱니가 없고 갈라지지 않습니다.
먹을 수 있는 산나물이라 해도 원추리, 두릅, 고사리 등은 고유의 독성 성분을 미량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끓는 물에 충분히 데쳐 먹어야 합니다. 특히 원추리에 들어 있는 콜히친이란 성분은 구토 증상을 유발하는데, 원추리가 성장할수록 성분이 강해져서 반드시 어린 잎만 골라 익혀서 섭취해야 합니다. 물론 산나물과 독초를 구분하기 쉽지 않으니 아예 채취하지 않는 것이 독초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겠죠.
아무데서나 나물을 캐서도 안 됩니다. 산나물에도 주인이 있거든요. 국유림과 사유림에서 임산물을 무단으로 채취하다가 적발되면 산림보호법 등에 따라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다. 해마다 봄철이면 등산객과 상춘객이 입산 통제구역에 들어가 산나물과 약초를 채취하고 산림을 훼손해 관리당국이 골머리를 앓는다고 합니다. 산림청과 국유림관리소, 각 시도 관계부서는 드론까지 동원해 특별단속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4~5월에만 임산물 무단 채취로 적발돼 계도ㆍ훈방 조치된 사례가 52건에 달합니다. 단속에 잡히지 않은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겁니다.
산나물을 채취하려다가 산에서 길을 잃는 사고도 적지 않습니다. 일례로 제주도에서는 최근 5년(2019~2023년) 동안 도내 ‘길 잃음 사고’가 459건이었는데 그중 41.4%인 190건이 고사리 채취 중에 발생했습니다. 고사리 철을 맞은 요즈음 제주 소방서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고사리를 꺾다 길을 잃었다”는 신고가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산나물은 먹는 재미보다 직접 캐는 재미가 더 좋다”는 것, 잘 압니다. 하지만 독초 위험, 산림 훼손, 조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재미를 즐길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