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정보를 빼주는 대가로 금품과 향응을 주고받은 혐의를 받는 SPC그룹 임원과 검찰 수사관의 첫 재판이 공전했다. 핵심 공범인 허영인 회장 수사를 이유로 관련 소송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검찰은 재판부로부터 "기소 시점을 잘못 잡았다"는 질타까지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허경무)는 29일 검찰 6급 수사관 김모씨와 백모 SPC 전무에 대한 첫 공판에서 검사를 향해 "구속기소 상태에서 왜 피고인의 수사기록 열람 등사를 거부하고 있는 거냐"고 나무랐다. 앞서 김씨와 백 전무 측은 "수사기록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기일 변경을 신청했는데, 재판부가 이에 대한 검찰 입장을 듣기 위해 이날 재판을 그대로 진행했다.
검찰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 핵심 공범 소환이 예정된 다음주엔 가능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공범) 수사가 끝나지 않으면 재판을 못하는 거냐"며 "증거 내용을 보여주지 않은 채로 재판을 하겠다는 건 기소나 구속영장 청구 시점을 잘못 선택한 거 아니냐"고 비판했다. 구속영장이 지난달 6일 발부된 점을 언급하며 "이런 상태에서는 피고인들을 가둬 놓을 명분이 없다"고 강조했다.
공소장 문제점도 지적됐다. 범죄일람표(여러 범죄사실을 표의 형태로 정리한 것)에 첨부된 녹취록 복사본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어기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검사가 기소를 할 때 공소장 하나만 제출해야 하고 법관에게 선입견을 줄 수 있는 서류·중거물을 일체 낼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은 공소 절차의 무효로 간주되어 공소기각 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읽다가 중단했다"며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로 판단되면 사건이 다 없어지는 효과가 생기니 증거 조사 전에라도 문제 되는 건 정리를 하셔야지 싶다"고 말했다. 원칙에 어긋나지 않게 공소장을 변경하라는 권고나 다름 없다.
재판부는 김씨와 백 전무가 유출한 개인정보의 일례로 검찰이 제시한 '조직 배치' '구내 전화번호' 등에 대해서는 "이런 것까지 개인을 특정하는 정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공소사실 중 김씨가 뇌물을 받은 시기보다 뒤에 발생한 행위가 포함돼있는 것에 대해서도 "(법리상) 부정처사 후 수뢰죄에 해당하는지 헷갈린다"고 의아해했다. 검찰은 "의견서를 통해 검토 내용을 밝히겠다"고 답했다.
김씨는 2020년 9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백 전무를 통해 SPC 측에 각종 수사 정보를 건넨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허영인 회장의 배임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이었다. 백 전무는 620만 원 상당의 SPC 상품권과 골프·식사 접대 등을 김씨에게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의혹의 정점인 허 회장 소환 조사 후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